오리무중(五里霧中)의 고속도로를 달려 늦가을 대둔산(878m)을 만난다.

 단풍객들이 휩쓸고 간 등산로는 밤새 남자에게 시달린 술집 여자같다.

 어지러이 흩어져 짓밟힌 낙엽 위에 홈리스들의 모습이 겹치는 건 왜일까?

 생기 없는 하늘, 잎 떨군 나무, 을씨년스런 바위들이 '귀곡산장' 분위기다.

 철 지난 바닷가는 쓸쓸한 낭만이라도 있지, 안개 낀 대둔산은 스산하기만 하다.

  

 

 그래도 눈 돌리면 골격 좋은 암릉이 눈 앞에 즐비하니 이 아니 즐거우리?

 산 넘어 산, 그 산 넘어 또 산. 시야가 멀어질수록 흐려져 마침내 하늘과 하나되는 산.

 눈 앞의 암릉미보다 나는 먼 산의 흐린 실루엣을 더 좋아한다.

 람보같은 근육미를 자랑하는 암릉도 좋지만, 어깨를 맞대고 이어지는 순한 능선길도 좋다.

 

 

 

 까마귀만 날았으면 틀림없이 귀곡산장인데...

 오늘 소품에서 까마귀가 빠졌어.

 

 

 올망졸망 이어지는 바위능선. 눈맛이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감흥이 없는 것은 철재 사다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슬아슬한 절벽에 거의 수직으로 설치한 다리가 흉물스럽기 짝이 없다.

 산이 불쌍하다. 사람들에게 밟히고 찢기고...나 또한 너를 밟고 있으니 어찌 하리?

 

 저녁 뉴스에서 지리산 천왕봉 일대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격분했다.

 케이블카 놓으면 천왕봉까지 1시간에 갈수 있으니 많은 국민들이 즐길수 있어 좋단다. 

 개발지상주의가 만연한 세태에 흥분을 넘어 서글픔을 감출 수 없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고 보면 좋겠다. 제발.

 

 산이 높지 않아 깊은 맛은 없지만 낙조대에서 마천대로 이어지는 암릉이 멋드러지다.

 천년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저 바위처럼 변함없는 신념 하나 가지고 싶다.

 그 신념에 기대어 남아있는 날들을 보내고 싶다.

  

 

극과극은 통한다고 했지.

빨강은 노랑으로 인해 더욱 돋보이고, 노랑은 빨강으로 인해 더 아름답다.

사람의 인식도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모자란 나로 인해 잘난 네가 돋보이고, 잘난 나로 인해 못난 네가 더 아름다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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