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오토바이를 끌고 온 남자가 색소폰을 불고 있다. 뒷자리에 싣고 온 스피커로 백뮤직을 깔아놓고, 악보를 보며 열심히 불고 있다.
드문드문 등산객이 지나다니는 동네 뒷산에서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저 혼자 색소폰에 빠져있는 남자.
썩 매끄러운 음색은 아니었지만 연주에 심취한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아무리 젊게 봐준다 해도 나이는 50대 후반 쯤? 그 나이에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는 게 어디냐.
재수 없으면 백살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잘 늙으려면 뭔가 자기만의 고유 영역이 있어야 한다.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 한다.
이것 저것 찔러보기나 하고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너무 늦은 건 아니라고 항변하기엔 내 몸이 너무 낡았고 의지도 박약하다. 집중력이 떨어져 정신도 산만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6/16 단오제 행사에서, 가야금 병창>
자주 드나들던 카페에 발길이 뜸했더니 카페지기란 사람이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충고를 장황하게 올려놓았다.
그 아래 댓글이 더 가관인 것이 '가는 사람 안잡는다. 갈라면 빨리 가라'. 머뭇거리지 말고 가는 게 남은 사람 도와주는 거란다.
참 경박한 인간관계. 열 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소홀하면 그만인 게 인생사인가? 남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나이 먹었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란.
나도 심드렁할 때 있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있는데... 내가 늘 명랑하게 자기네들 비위만 맞춰주랴?
연륜을 앞서는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고, 지식과 지혜는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닌가 보다.
<중생의 삶이 괴로운 것은 우주에서 나 하나를 따로 놓고, 온 세상이 내 뜻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상이 나와 맞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고단할 일이다. - 청호스님>
얼마전에 서유럽 쪽을 다녀온 k가 향수를 선물로 갖고왔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뿌려봐. 나도 아플 땐 향수로 기분전환 하거든."
메니큐어도 안 바르는 내게 향수는 가당찮은 선물이지만, 이국 땅에서 나를 생각한 그녀에게 작은 감동을 느꼈다.
어떤 모임에서 가벼운 언쟁이 있은 뒤, 잘 만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속으로 그녀가 나를 미워하나 보다 생각했었다.
"미워한 거 아니야. 그냥, 내가 말투가 원래 좀 그래... 나, 사람 미워할 줄 몰라." 그 한 마디에 와락 그녀를 안아버렸다.
그래, 내가 미안해. 내 생각이 좁았어. 역시 네가 나보다 그릇이 크구나.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져주는 거고, 그게 결국 이기는 거다.
<어느 저녁 거실 한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