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 차림의 소년이 눈사람의 손을 잡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애니메이션을 몇 번이나 되돌려본다.

리베라소년합창단의 Walking in the air 노래가 꿈결인 듯 흐르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 비슷한 꿈을 꾸었는데 언제부턴가 공중을 나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발을 한번 구를 때마다 점점 높이 올라가던 내 몸.

신이 나서 발을 구르다가도 점점 멀어지는 마을과 사람들이 낯설어 무서워지던 순간 잠이 깨곤 했다.

이젠 더 이상 만화 같은 꿈을 꾸지 않게 된 나이가 슬프다.

스노우맨의 손을 잡고 눈 덮인 마을 위를 날아다니는 소년의 행복한 표정을 나는 영원히 지을 수 없겠지.

 

성탄절 연휴를 객지에서 보내는 아들이 안쓰러워 전화를 했더니 문자로 답장이 왔다.

“지금 J랑 영화보는데, 왜 엄마?”  “그냥 궁금해서. 성탄절 잘 보내라고~”

조금은 안심, 또 조금은 서운. 영화가 끝날 즈음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J야, 진수랑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구나. 니가 내 아들 친구라서 참 좋다!”

재미없는 부모 대신 아들을 즐겁게 해줄 여자친구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빨리 키워서 장가보내 버려야지. 나처럼 늦깎이 결혼으로 후회하게 만들진 말아야지.

 

생각은 멀찌감치 강원도 마장터와 은비령을 헤매고 있는데 몸은 꼼짝없이 방안에 있다.

눈길을 함께 갈만한 벗이 없다는 게 아쉽다. 내가 데려갈 사람은 있어도 나를 데려갈 사람은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오래 믿고 의지할만한 대상이 없었다.

아침 일찍 수영 마치고 절에 갔다 와서 점심 먹고 오후 내내 지도를 보거나 책을 읽었다.

돌이켜보니 올 한해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여행이었다.

히말라야를 연상케하던 백록담 남벽의 설화, 오대산 서대암의 적요, 아침가리골 단풍...

번화한 도심의 화려함을 피해 우리 땅의 속살을 파고드는데 재미가 붙었다.

대문짝만한 강원도 지도에 면옥치 달하치 같은 강원도 오지들을 형광펜으로 표시해두었다.

언젠가는 가리라. 혼자라도 가리라. 눈 속에 처박혀 미이라가 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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