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차례상 물리고 돌아서면 시어머니 기일이다.
올해같이 연휴가 5일이나 될 때는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초사흘이 기일이다 보니 제수(祭需) 장만하기도 까다롭고 어디로 잠깐 여행 갔다 오기도 어렵다.
명절 앞두고 바람같이 훌훌 돌아다니다 오면 답답한 가슴이 다소 시원해지려나.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집안 얘길 바람에게나 들려줘야지 우짜겠노.
십여년 만에 저그 엄마 제사에 온 시누이가 남편 험담을 끝도없이 늘어놓는다.
"내가 몬 살겄다. 그 인간이 한말 또 하고, 한말 또 하고... 더러운 병 치매가 왔는가비라!"
"일흔여섯이면 치매 올 때도 됐죠. 그래도 고모부는 건강하시잖아요. 그 나이에 병원 신세지는 분들도 많아요."
"아들 장가보내고 나서 바로 이혼했어야 하는 건데... 저 인간 나보다 오래 살면 어쩌지?"
우리 엄마도 아버지를 저렇게 미워하셨던가? 자식이라고 낳아놓고 제대로 건사하지도 않은 남편을 평생 원망했던가.
아버지 때문에 죽으려고 약을 세번이나 먹었다던 어머니. 당신의 그 죄값으로 평생 집이 안 풀린다고 생각하셨던 어머니.
"제발 나보다 먼저 가소. 자식들 도와준다 생각하고 먼저 가소."
새벽 예불 때마다 소원하셨지만 기어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두고 먼저 가셨다. 혼자 남은 아버지의 말로(末路)는 참담했다.
늙어서 구박받는 남자들을 보면 참 가엾다.
젊을 때 좀 잘 하지, 어쩌다 아내 가슴에 못을 박아놓고 늘그막에 구박 덩어리란 말이더냐.
혼자 마골산에 올랐다. 하산길에 복수초가 피었나 정찰도 할겸.
벌떡 선 바위에 '변강쇠바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건너편 늙은 여자의 엉덩이같은 바위가 '옹녀바위'란다.
변강쇠는 그럴싸한데 옹녀는 영 아니네. 민망할 정도로 늘어진 엉덩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문득 내 몸을 생각한다. 거울 앞에 서기가 부끄러운 나이. 내 생의 봄날은 오래 전에 가버렸구나.
25년을 살아온 고장. 또 앞으로 그만큼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곳.
변강쇠바위 옆모습이 앞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앞으로의 25년이 전혀 딴판이었으면 좋겠다.
더 많이 헤매고 더 많이 탐험하리. 더 열심히 읽고 치열하게 써야 하리.
연휴 기간에 본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프랑스 소설 '구해줘'가 기억에 남는다.
두 작품은 전혀 연관이 없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이다>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는 영화라기보다 서정시 같았고, 기욤 뮈소의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 영화같았지만.
..... 누군가 나를 오해한다면, 그건 내가 진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아들이 캐나다로 떠날 날이 나흘 남았다.
이민가방 2개 분량의 옷가지와 생활용품을 쌓아놓고 녀석은 오늘 저녁도 송별회란다.
내가 장거리 여행을 가고 싶어도 너 때문에 못 간거 알어? 혹시라도 내가 탈나면 네가 못 떠날까봐. 네가 걱정할까봐.
아들아, 너 떠나면 그때부터 나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이란다. 올 겨울 칩거는 끝이란다!
너는 내 품을 벗어나 행복하고, 나는 네 걱정에서 벗어나 즐거울 거야. 1년동안 잘 놀다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