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저 숲에서 몇 시간을 놀았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잘디 잔 야생화들과 눈 맞추며 놀았다.
비탈진 계곡 건너,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곳. 노루귀와 꿩의바람꽃이 지천이었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어제는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렸다. 혼자라서 들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구나!
3년동안 갖고 놀던 캐논 450D를 니콘 D300으로 바꿨다.
사진을 더 잘 찍어보려고 바꿨다기 보다 산에 덜 다니려고 카메라를 바꿨다. 무릎을 위해 등산은 줄이고 출사는 늘여야지.
기변하고 어제 첫 출사를 나갔는데 결과물은 엉망이었다. 캐논과 니콘의 차이를 여실히 느꼈다.
하루 사이에 날씨는 꽃샘추위로 바뀌었지만 노루귀는 활짝 피고 바람꽃은 입을 꼭 다물었다.
새침한 것 같으니라고. 좀체 자기 속내를 보이지 않는 여인같이...
혼자 숲에 있어본 사람은 안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가벼운 마음. 그리고 달콤한 외로움.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그 순간의 집중을 사랑한다. 잡념이 틈입하지 않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사람에 대한 애착은 때로 상처를 동반하지만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고통이 없어서 좋다.
이제 막 올라오는 복수초를 담은 게 2주 전, 저 숲에서 만난 황금색 복수초는 환희였다.
70대 노부부의 매실농장 뒤. 십여년간 매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노부부는 저 꽃을 보지 못했다던가.
꽃을 찾는 사람에겐 꽃만 보이고 열매를 찾는 사람에겐 열매만 보이겠지.
캐논 450D 시집 보내기 전 마지막 기념사진.
3년전 무릎 수술 후 좌절과 고통 속을 헤맬 때 너는 내 벗이었고 위로였고 구원이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때로는 사람보다 꽃이 아름답던데. 사람보다 사진이 위안이던데.
저 작은 풀꽃 앞에 열중하는 순간, 그의 마음은 無念 無想 ... 천국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