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선생이 파킨슨병이란다.

"그런 건 유명한 사람이 걸리는 거잖아요. 대통령이나 교황, 알리같은 권투선수같이..."

하루에 담배 2갑, 커피 10잔씩 마셔도 끄떡없던 사람이 와병중이라는 전갈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나를 산으로 인도해준 사부. 백발을 어깨까지 기른채 고무신 신고 산을 오르내리던 산신령. 그가 병이 들었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양순했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어야 겨우 발걸음을 떼는 어린아이로 변해있었다.

한시도 집에 붙어있질 않던 사람, 일년에 6만km씩 차를 몰고 다니던 사람... 저 사람이 그 사람 맞나?

"당신, 성할 때 실컷 돌아다녀봤으니 원도 한도 없지요?"

사모님의 말씀에 K선생은 고개를 끄덕인다. 70평생 바람처럼 살아온 자신의 일생에 후회는 없으리라.

한쪽으로 기우뚱한 어깨, 끊임없이 떨리는 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밝고 온화했다.

2남2녀와 친인척들이 사다 나르는 각종 특효약 덕분에 그의 피부는 소년처럼 탱탱했다.

"강선생, 내 죽고 나면 추도사는 니가 쓰야 된대이~"

모든 걸 내려놓고 이젠 죽음조차 농담으로 건넬 수 있는 나의 사부님.

 

내가 차 없던 시절에 참 많이도 태워주셨는데, 밥도 자주 사주시고 산도 많이 가르쳐주셨는데

이젠 내가 사부님을 태우고 다닐 때가 되었는데.

아, 그러나 어디로 갈수 있단 말인가? 그는 평지에도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운데...

 

 

 

내원암에서 꽃무릇 사진을 찍고 있는데 N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주 자궁암 검사를 했는데 이상소견이 있단다.

암이냐고 물었더니 자세한 건 원장님이 설명하실 거라며 당장 병원으로 오란다.

"오늘은 바쁘니까 내일 들러볼게요." 내 말에 간호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암검사에서 이상소견이 있다면 암이겠지 뭐. 그런데 왜 하나도 겁이 안 나는 걸까? 내가 간이 크긴 큰갑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내가 안달복달하거나 대성통곡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 않은가.

 

저녁 약속까지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와 인터넷에서 자궁암에 대한 자료를 검색했다.

이런 저런 증상이 최근 내 몸에 나타난 신호와 똑같다.

두어달 전부터 허리가 아파 새벽에 잠이 깨곤 했는데, 허리통증이 느껴지면 이미 자궁암 말기란다.

제일 먼저 아들 생각이 났다. 22살, 아직은 엄마가 필요한 나이인데 녀석에게 울타리 노릇도 못해주고 가면 어쩌지?

남편은 경제력이 있으니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들에게 엄마는 나 하나 뿐이잖아.

만약에 암이라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조용히 보듬고 가야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리냐고 억울해하지 말아야지. 내가 걸리면 안되고 남이 걸리면 되는 거 아니잖아?

운명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법. 뭐가 됐든 오기만 해봐라,  내 앞으로 오는 건 내가 다 받아낸다!

 

오늘 아침 병원에 가서 들은 말은 기대(?)에 흡족하지도 미흡하지도 않았다.

"일단, 암은 아니에요. 그런데 정상도 아니거든요. 자궁암에 걸릴 수 있는 바이러스가 있는지 DNA검사를 해봅시다."

우리나라에서 자궁암 완치율이 95%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암세포도 생기기 전에 이렇게 바이러스 검사를 하니 조기발견으로 자궁암 완치가 쉬운 것이다.

지난밤 짓다가 허문 기와집을 언젠가는 또 짓게 되겠지.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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