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보다 남아있는 날이 적은 탓인지 회오(悔悟)에 잠길 때가 많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부분>
시인은 가끔 후회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자주 후회한다.
내가 놓친 기회를, 내가 포기한 물건을, 내가 버린 사람을.
나는 너무 깊이 생각하다 기회를 놓쳤고, 간이 작아 대물을 포기했으며, 지나치게 깔끔해 인연을 잘랐다.
좀 단순하게 생각하고 더 깊이 사랑할 걸.
바쁜 세월을 빗대어 ‘일 년 열두 달 헐어놔도 별로 쓸 것 없다’고들 하지만 어찌 보면 인생사 자체가 별로 쓸 것 없는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몫에 충실하게 살고 있지만 그 충실과 최선에 묶여 정작 자기 자신은 사라진 듯한 느낌.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런저런 관계 속에 설탕처럼 녹아있을 뿐이고.....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을 더러 만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한탄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저마다 인생에 기대치가 높았지만 그만큼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모르긴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삶에는 득과 실, 미와 추, 공(功)과 과(過)가 공존하는데 왜 우리는 공은 안 보고 과만 보게 되는 것일까.
이루지 못한 것들만 한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내가 가진 건 당연하고 갖지 못한 건 후회하다니.
아름다운 지구별에 소풍 나와 지금까지 잘 놀고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삼재팔난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 같은데.
등소평은 모택동을 평가하면서 “그의 공功이 일곱 가지이고 과過가 세 가지이다.
공이 과보다 크기 때문에 그를 최고지도자로 받들어야 한다."며 공칠과삼(功七過三)을 역설했다.
등소평의 이 말 한 마디가 모택동이 중국 역사에서 존경받는 전통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 역사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공칠과삼이 세상만사에 적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공십과무(功十過無)의 점수를 줄수는 없지 않겠나.
한치의 실수도 회의(懷疑)도 없이 자신만만하게 일생을 보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생에 당당할 때도 있지만 더러는 부끄러운 부분도 많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에 공무과십(功無過十)을 매길만한 사람도 드물지 싶다.
고통과 좌절 눈물 속에서도 잠시 잠깐 행복한 순간은 있지 않았던가.
한때는 희망이 있었고, 누군가에게 가슴 설레었고, 종내는 누군가에게 낡은 울타리가 되어야할 우리들.
패배는 인정하되 열패감에 휩싸여 인생 전체를 매도하지는 말 것. 내가 나에게 가만히 타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서도 공칠과삼을 적용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혀 살다가 마찰이 생길 때도 있는 법, 어느 한 사람에게만 공무과십(功無過十)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공오과오(功五過五)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문제는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습성이다. 내가 입은 상처만 크게 보이고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기심.
그래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화(禍)를 쌓게 되는 건 아닌지.
내가 보내버린 인연들에 대해 나도 반성문을 쓸 때가 많다. 내가 좀 져줄 걸. 내가 좀 참을 걸. 내가 더 깊이 사랑할 걸.
사람에 대한 평가도 100%는 부당하다고 본다.
부처님도 깨닫기 전에는 중생이었고,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는 보통사람이었다.
한 사람에게 깃든 인격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고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할 수도 없다.
내겐 그럴 수없이 다정한 사람이 누군가와는 견원지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허물 많은 중생일 뿐, 그 누구도 완벽한 천사나 악마는 될 수 없다.
공이 많고 과가 적다면 대충 묻어주고 가는 게 옳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그 계산을 잘 못해서 나는 많은 사람을 놓쳤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세상사 쓸 것 없다 군불 때고 낮잠 자자’ 어느 분의 넋두리처럼 인생사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별로 없지 싶다.
어차피 인생의 반쪽은 눈물인 것. 그 누구도 눈물과 비극을 모르고 살수는 없다.
고통과 좌절을 넘어 자신의 인생에 공칠과삼의 점수를 줄수 있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거라고 나는 믿는다.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내 인생.
어디에도 치열하게 매진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올인하지 못했으며 그저 바람처럼 자유롭기만 했다.
그 자유의 댓가로 치러야 할 것들이 많지만 기꺼이 내 몫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7할의 자유와 3할의 고독, 그게 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