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낯선 도시에서 밥 먹을 곳을 찾아 헤맸던 적이 있다. 상가 주변이라 식당도 더러 있었지만 아침밥을 파는 곳이 별로 없었다.

나는 배가 고프면 머리가 아프고 힘이 쭉 빠진다. 쾡한 눈으로 식당을 찾아 헤매다 ‘진주추어탕’ 낡은 간판을 발견했다.

출입문이 열려있고 주방에서 김이 나는 걸 보니 아침밥을 파나 보다.

“추어탕 되지요?” 주인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밥부터 주문했다. 뱃가죽이 등에 붙는 느낌이다.

“아이고, 좀 많이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선지국 끓이고 있는데.” 서부경남 억양의 주인여자는 가스불 위에 커다란 국솥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 국솥이 끓어야 아침을 차려줄 수 있으니 바쁘면 다른 데 가서 먹으란다.

“배가 고파서 걸어갈 힘도 없는데... 그냥 기다릴게요.” 어제 저녁도 변변찮게 먹었으니 이 아침 헛것이 보일만도 하다.

 

흐릿한 눈으로 조간신문을 펼쳐 들고 큰 제목만 대충 훑어보고 있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추어탕 한 그릇이 나왔다.

반찬 세 가지와 뚝배기 가득 추어탕 하나.

“어? 빨리 나왔네요.”  “손님이 배고파 힘이 없다 카는데 빨리 밥을 줘야재. 내 하는 일이 배고픈 사람한테 밥 주는 긴데.”

선지국이 가득 찬 솥이 끓어 넘칠까봐 여인은 가스불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들어섰던가 보다.

국이 끓은 다음 내 밥을 차려줄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주는 게 먼저지, 선지국 끓이는 게 먼저가 아니더란다. 여인은 국솥의 가스 불을 끄고 내 밥상을 먼저 차려준 것이다.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는 여인의 말을 곰곰 생각했다.

자신의 본분이 ‘밥을 파는’게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인.

직업관이라면 너무 거창한 표현이겠지만 여인의 그 마음 자세에 작은 감동을 느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건 숭고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먹고 살기 위해 밥을 파는 일’로 여긴다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낡은 앞치마를 두르고 새벽부터 국솥 앞에 서있는 여인이 거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애들 가르쳐서 돈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니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고,

의사가 ‘남의 고통이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니 영리 최우선의 병원들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수반이 그 직분을 지켜야 국정이 흔들리지 않고, 지도자가 본분을 다해야 따르는 사람들이 허튼 짓을 않는다.

리더가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본분을 망각하면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도덕적해이(道德的解弛)에 빠지게 된다.

가장이 직분을 잘 지키면 위계질서가 잡혀 온전한 가정이 유지되고 자식들 또한 본분을 다하게 되는 것 아닐까.

재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인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그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길렀는지 의문이 생긴다.

아버지가 교통정리를 잘하면 자식들이 당연히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문단 말석에 서 있는 나는 가끔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과연 작가의 직분에 충실한가?

나는 무엇을 위해 쓰는가. 공명심을 바라는가, 아니면 자기미화의 한 방편일까?

글 같지도 않은 글을 흩뿌리며 작가라는 타이틀에 미련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과감히 붓을 꺾어 부끄러움을 면하고 싶을 때가 많다.

밥 팔아 먹고사는 게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줄 수 있어 보람 있는 여인처럼

자신의 직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많은 세상. 그들이 자신이 본분을 제대로 알기만 해도 우리 사회가 이토록 혼탁하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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