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몸체 대나무 다리의 사슴벌레 조각. 나의 멘토가 만들어 주신.>
막연한 불안이 현실로 닥쳤다. 신문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모두 사실이었나 보다.
기업체 인턴사원 모집에 지원했던 아들이 최종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0명 모집에 000명 지원의 막강한 경쟁. 서류 심사를 거쳐 인·적성검사까지 치르고 마지막 최종면접을 보러 서울 다녀온 게 벌써 세 번째다.
처음엔 기대와 설렘으로, 이후엔 긴장과 불안으로 면접을 치르면서 아들은 사회의 진입 장벽이 너무나 높다는 걸 깨달았다.
“자네, 병역 면제 받았군. 왜 그런가?”
“1학년 때 축구하다 무릎을 다쳐 수술했습니다.”
“지금 상태는 어떤가?”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럼 군대를 갔어야지! 내가 해병대 출신이란 말이야!”
세 번째 회사에서 면접관이 아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병역이 문제가 된다면 애당초 서류에서 탈락시키지 최종면접까지 끌고와서는 한다는 말이 억지로라도 군대를 갔어야 한다고?
아들은 다친 사실을 숨기고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회사에서 거절당했다.
면접을 앞두고도, 치르고 나서도 아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좀 억울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아들이 병역 면제를 받자 친구들은 ‘신의 아들’이라고 부러워했지만 막상 사회에 진입하려니 신의 아들을 받아줄 회사는 흔치 않은 모양이다.
병역에서 경쟁력을 잃은 대신 다른 분야에서 뛰어나면 되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아들은 평범한 ‘범생’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 사회가 평범한 범생을 받아들일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
두 달짜리 인턴사원 모집에 이렇게 경쟁이 막강한데 정규사원 모집엔 얼마나 사람이 몰릴까.
작년 재작년 취업재수생들까지 몰려들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게 뻔한데.
부모 세대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평생직장을 보장받았지만 아들 세대는 대학을 나와도 평생직장은 커녕 사회 진입조차 힘든 상황이다.
오죽해야 모 회사에서는 아버지들이 조기 퇴직하는 조건으로 자식들을 그 회사에 입사시켜줄 것을 경영자에게 요청했을까.
아들이 면접에 탈락했다는 얘길 지인에게 했더니
“어머나, 우리 아들은 아직 2학년이라 다행이네요. 우리 아들 졸업할 때쯤이면 괜찮아지겠죠?” 한다.
무심코 나온 말이겠지만 인간 본성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씁쓰레했다.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는 존재가 인간이라지만 어찌 그리 생각이 짧을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섭섭병이 도져 살갑게 느껴왔던 그녀에게 정이 뚝 떨어졌다.
지금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작년 재작년의 취업재수생들까지 경쟁에 합세했기 때문이고,
2년 후엔 경쟁이 더 치열할 수도 있다는 얘길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언제부터 사회 분위기가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을까.
삼십이 넘도록 취직도 못한 남의 자식, 평생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의 자식은 관심도 없고
제 자식이 그 처지가 되면 전전긍긍하는 세상. 나 역시 내 자식 일이라 새삼 심각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학 졸업때까지 드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데, 투자 대비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현실.
이 고통의 터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내심 불안하다. 산이 높았으니 골이 깊을 건 당연한지도 모를 일.
눈부신 경제발전을 거듭하며 위만 보고 달려온 탓에 발 아래 내리막이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한 걸음 내딛어보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절벽 앞에 서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자식들아, 미안하다. 지금 너희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부모 세대가 누린 부의 댓가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 가도 못 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중에서>
제 입 하나 덜기 위해 양복 차려입고 면접 보러 가는 아들의 등에서 비애를 느낀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밥을 벌어야 하는 이유로 너는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갈등했을 것이다.
어느 집 아들이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 덕분에 특채되었다는 소식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아들아, 갈수록 세상살이가 힘든 모양이다. 너나없이 무거운 짐 들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니.
생각해보면 덥지 않은 여름이 없었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역사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니.
역사의 갈피마다 피와 땀과 눈물이 얼룩져있듯 어느 누구의 인생도 탄탄대로만 달릴 수는 없단다.
너무 고민하지 마라. 네 나이 겨우 스물셋. 열매를 바라기엔 좀 이른 나이인지도 모른다.
너에게 세상을 맞출 수 없다면 네가 세상에 맞춰갈 수 밖에 없겠지.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시야를 넓히도록 하자.
나는 아들의 밥벌이를 위해 오늘도 아침 일찍 수영장 서른 바퀴를 헤엄치고 왔다.
내가 씩씩하게 버텨야 아들이 기죽지 않을 것이고, 내가 꿋꿋해야 아들이 사회 진입 장벽에 부딪혀도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넘어지면 흙 털어줄 에미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