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던 밤, 늦은 귀가길에 잡아탄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강도를 만났다.
내 뒤에 서있던 사람이 갑자기 목을 휘감고 ‘소리 내지 마!’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지던 생각이 난다.
옆 거울에 비친 그 남자는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장면에 내가 출연하고 있었다.
15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팔을 비틀며 계단 아래로 구르듯 뛰어내렸다.
그리고 온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새벽 2시에 우리 집에 두 명의 형사가 왔다. 고함소리에 놀란 주민들이 뛰어나와 나를 발견했을 땐 범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후들후들 떨고 있는 내 앞에서 형사들은 자초지종을 듣고 내게 범인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눌러쓴 모자만 기억날 뿐, 나는 그 남자에 대해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목에 닿았던 하얀 칼만 섬뜩하게 생각났다.
“아주머니, 사람이 당황하면 헛것을 보기도 합니다. 특히 담력이 약한 여성들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아주머니가 본 건 칼이 아닐 수도 있어요.”
형사는 내가 목을 감긴 상태로 얼핏 본 것이 정확하다고 믿기 싫은 눈치였다.
피해자 앞에서 사건을 축소시키려는 형사를 보고 나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밤늦게 다니다가 사고를 당했고,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경찰이 출동했으니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동네에 소문내지 마세요. 범인은 범죄 현장에 반드시 또 나타납니다. 보복범죄를 노릴 수도 있어요.”
형사들이 경찰서로 돌아간 뒤 한동안 나는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그 사고로 나는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고 오랜 불면에 시달렸으며 범인과 비슷한 체격의 남자만 보면 몸을 숨겼다.
지금도 나는 범인이 강도 미수였는지 폭행 미수였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단지 그 사건으로 나는 이웃들의 말에 칼보다 예리한 것으로 찔린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한 통로에 살면서 날마다 얼굴 맞대던 사람들이 등 뒤에서 ‘여자가 밤늦게 다니니까 그런 사고를 당하지.’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엘리베이터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내 얼굴에 침 뱉는 말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옷차림이 야하니까 당하지.’라거나,
밤길에 괴한의 공격을 받은 여성들에게 ‘행실이 부정하니 그렇잖아.’라고 손가락질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언제까지나 피해자이고 약자여야만 할까.
여자는 사고를 당하고도 원인제공자가 되고 품행이 바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피해자를 폄하한다.
최근 성폭행 사건이 연일 터지면서 언론에 부각되고 있지만 사실 알려지지 않은 범죄가 훨씬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거나,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감추는 일도 많을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밝아져 피해 사실을 드러낼 수나 있지, 내가 건너온 저 무지의 시대에는 당한 사람만 숨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
여고시절 친구 하나는 늦은 하굣길 남학생들에게 끌려가 집단 폭행을 당했다.
뒤따라오는 남학생들을 피한다는 게 인적 드문 논밭을 건너가게 되었고, 무덤가에서 그녀는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녀를 짓밟은 야수들 중에 옆집에 살던 남학생 얼굴이 있더란다.
그녀에게 몇 번이나 쪽지를 보냈는데 모른 척했더니 친구들과 작당해서 그녀를 범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사건을 20년이 넘어서야 털어놓았다. “학교에서 알면 퇴학 당할까봐 말 못했어. 오빠들이 알면 죽도록 얻어맞았을 거야.”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여자가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남자에게 당해도 싸다고 치부되던 게 당시의 사회 통념이었으니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엔 혈기왕성한 십대의 무모한 폭행 말고도 사랑을 빙자한 간교한 폭행도 많았다.
나쁜 일은 덮어주는 걸 미덕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쉬쉬 하며 숨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었다.
열여덟살 꽃봉오리같은 소녀를 체력단련이라는 핑계로 온갖 성추행을 일삼던 교사가 결국 그녀를 임신시키고 말았다.
키가 커서 늘 교실 뒷자리에 앉았던 그녀가 며칠씩이나 결석을 해 자취방에 찾아가보니 그녀는 파리한 얼굴로 이불을 쓰고 누워있었다.
졸업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하혈이 심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친구들은 울분을 터트리며 껴안고 울었다. 학교에 사실을 고발하고 교사를 징벌하고 싶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서 그랬대. 너무 사랑해서...”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범해놓고 사랑이라고 얼버무리는 게 남자의 야수성(野獸性)일까.
하긴, 조카를, 이웃 여자아이를, 장애인을 폭행하고도 천연덕스레 살아가는 철면피들도 있지 않은가.
엊그제 만난 소설가 P씨가 좌담회에서 말했다.
“지난 시절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너무 잘못한 게 많아요.
여자 위에 군림하고 짓밟고 유린했어요. 남자들은 과거를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속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단, 억울하게 당한 여성들을 두 번 밟진 말았으면 좋겠다.
힘이 없어 당한 일을, 재수 없어 당한 일을 여자 탓으로 돌리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밤이면 십여 년 전의 그 사건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해진다.
오늘 같은 밤, 누군가 나처럼 늦은 귀가를 하다 악마를 만나지 않기를!
재수 없어 만났다 하더라도 이웃들의 위로와 격려 속에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