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간밤에 눈이 와서 도로가 결빙됐다고 회사에 비상이 걸린 모양.

폭설은 아니지만 길이 얼어붙어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이런 날 강동 해안의 설경은 어떨까. 날이 밝기를 학수고대하다가 차를 끌고 나갔다.

기어를 저단에 놓고 슬슬슬슬 마골산을 넘었다. 브레이크 절대 금지!!! 자신에게 주문을 걸면서.

 

 

 

 

평소에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40분 넘게 걸렸다. 눈이 깊은 곳은 바퀴가 헛돌기도 해 간이 조마조마했다.

당사 낚시공원에서 일출을 봤지만 수평선이 흐려서 영 별로였다.

그래도 찍고 또 찍었다. 개인적으로 인공 구조물 같은 거 좋아하지 않지만.....

 

 

 

 

저 다리를 받치고 있는 섬이 '넘섬'이란다. 파도가 넘실댄다고 붙은 이름일까?

이쯤에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ㅠ.ㅠ

 

 

 

 

우가포의 설경을 보고 싶었다. 사진에 담고 싶었다. 얼어붙은 길이 무서웠지만 사진에 대한 욕망을 누를 순 없었다.

 시속 10미터의 속도로 벌벌벌 기어서 도착한 우가포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담한 항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배들과 눈덮인 마을이 참 아름다웠다. 처음 만나는 우가포 설경이다.

찍고 또 찍다가 렌즈를 갈아 끼우려고 차 문을 열었더니 아뿔싸, 카메라 가방이 없다.

당사항 일출을 찍으면서 바위 위에 그대로 두고 온 거다. 머리끝이 쭈뼛 섰다. 백만원짜리 수표가 머리 속에 왔다갔다 한다.

눈은 금방 녹을텐데. 지금 빛이 딱 좋은데... 다녀오자면 30분은 넘게 걸릴텐데... 설마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가방을 가져갈까?

불안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래도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 아까운 빛이었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카메라 가방은 무사했다.

유명 출사지에서 카메라 가방이며 삼각대 등 장비를 도둑맞는 경우가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나는 자진 헌납할 뻔했다.

가방을 항상 등에 붙이고 있어야지. 건망증이 도를 넘어 치매로 가는 이즈음에... 조상님이 도우셨나 보다.

 

 

 

우가포 독거노인이 가꾸는 밭에도 눈이 덮여 예쁜 설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엉덩방아 찧어가며 담은 사진, 잊지 않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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