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새벽, 잔설이 남아있는 칠불암을 올랐다.
동지 무렵 햇살이 가장 순하게 비친다는 마애불을 뵙는 순간 감동에 사로잡혔다.
떠오르는 해가 발그레하게 비칠 때, 바위는 따뜻한 체온을 지닌 생명으로 되살아났다.
살다 보면 자신에게 모험을 걸어볼 때가 있다. 확신이 없어도 길을 나설 때가 있다.
캄캄한 어둠, 잔설이 남아 미끄러운 길, 후원자가 없었다면 저 길을 오를 수 있었을까.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칠불암에는 맛있는 팥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년내내 어두운 감실에서 깊은 시름에 잠겨있는 할매부처.
동지 무렵, 해가 가장 낮게 뜰 때 비로소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시는 분.
은근한 미소일까, 깊은 시름일까. 어떤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미소에 비유하기도 한다는데.
해마다 이맘때쯤 할매를 뵈러 온다는 진사님들이 오시(午時)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짓날 오시에 할매 얼굴에 햇살이 가장 많이 드는 때라고.
햇살에 열광할 게 아니라 은은한 달빛 혹은 촛불이면 어떨까? 호기심에 가슴 두근거렸던 새벽.
촛불의 붉은 색감에 실망하고, 불상에 드리운 그림자로 또 실망했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동짓날 삼시 세끼 팥죽을 먹었다. 아침은 칠불암, 점심은 옥동 언니, 저녁은 친구네 팥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