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이틀 눈에 미쳐 돌아다녔다. 누가 부르는 것처럼 무엇엔가 끌려나갔다.
10센티도 안 되는 눈에 도심이 마비된 울산, 벙어리 냉가슴으로 뉴스만 보고 지낼 수는 없었다.
경주의 폭설 소식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황복사지 삼층석탑이었다.
벌판 한 가운데 오두마니 서 있는 그 탑. 불국사나 첨성대같은 유명세는 없어도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우가포의 설경을 보러 갔으나 눈이 없어 어물동으로 발길을 돌렸더니
지난밤 폭설에 마애석불이 뽀얀 담요를 둘러쓰고 계신다.
스패츠로 완전무장하고 마애석불 앞에서 두어시간을 놀았다.
나 혼자 이 신비로운 풍경 속에 있다는 게 분에 넘치도록 행복하다는 생각.
마애사 총무보살이 눈을 쓸러 나왔다가 나를 보고 "사진 잘 찍어서 좀 뽑아줘요. 우리 절에 달력 만들게~"
눈 속에 핀 한 송이 복수초.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고 어떻게 올라왔나 몰라....
경주는 눈 폭탄으로 도심이 납작하게 눌려있었다.
펄펄펄 내리는 눈 속에서 우산 들고, 카메라 들고...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럴 땐 파트너가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눈발 날리는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네.
사진이 잘 안나와도 좋아. 지금 내가 이 풍경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게 좋은 거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소나무들이 뚝뚝 부러져 누워있다.
가볍고 조용한 것들이 곧고 강한 것을 이긴다.
미친 김에 바짝 미쳐보자. 눈 내린 밤을 혼자 즐겨보는 거야!
우산 쓰고, 삼각대 들고, 카메라에 눈 안들어가게 바싹 끌어안고.....
몽롱한 분위기 연출, 괜찮나?
뒷날, 경주로 연짱 출사. 오늘은 김기사도 있고 파트너도 있다!
머리 위에서 눈 폭탄이 퍽퍽 떨어진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풀풀풀 내리는 눈 속을 헤맸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