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떠나고 없는 육신이 이런 모습일까. 아니, 사랑이 없는 내면이 이런 모습일까.
무너진 담벼락, 부서진 문틀, 주인이 버리고 간 세간살이들.....
주인은 어쩌자고 마루 밑에 신발 두 켤레를 가지런히 놓고 떠났을까.
집은 버리고 가지만, 추억은 영원히 두고 간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어린 시절 우리가 살았던 집들이 생각난다.
열 번도 넘게 이사했던 집, 엄마는 집도 없이 떠돌면서도 아파트는 죽어도 살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 완고하고 강직했던 엄마가 아들에게만은 뜻을 굽혀, 그렇게 싫어하던 아파트에서 살다 가셨다.
'복 없는 사람이 죽어야 남은 가족들이 패가 풀린다'며 한숨 쉬던 엄마.
저승에선 흙냄새나는 주택에 사시는지. 평생 소원을 푸셨는지.
비바람 무시로 드나드는 빈집에 풀씨들이 날아와 터를 잡았다.
황량하고 스산한 가슴에도 사랑의 씨앗을 싹틔울 수 있을까. 기쁨으로 무성하게 자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