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500m 설보정(雪寶頂)은 아직 겨울이었다. 황룡사 아래 계곡엔 이제 막 갯버들이 눈을 뜨고...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안나푸르나였는데... 이젠 안 가도 되겠다.
히말라야산맥 동쪽 끝, 동티벳 지역 구체구의 자연은 내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성도(成都) 공항에서 버스로 7시간,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갔으나 해발 3천을 넘어서자 고소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공항에서 산 고산증 약도 먹고, 현지에서 산 물약도 먹었다는데, 산소통을 입에서 떼지 못했다.
해발 4천까지 이런 길을 넘어왔다. 깎아지른 산에 구절양장 길을 뚫은 중국사람들, 참 대단하다.
다섯가지 색깔을 낸다는 황룡 오채지(五彩池).
만년설을 배경으로 파스텔톤의 물이 카르스트 지형을 따라 찰랑거린다.
갈수기의 물빛이 이럴진대 만년설이 다 녹고 나면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울까.
터키의 파묵갈레보다 규모도 크고 물빛도 다양하다.
중국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한번 와보고 싶어한다는 곳. 하루에 평균 1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구체구를 보고 나면 다른 물은 보이지도 않는다는데...
유규무언(有口無言)
다른 관광지에 비해 구체구가 비교적 덜 알려진 것은 사스파동과 사천성 대지진 때문.
장가계의 풍경, 계림의 산수, 황산의 산세와 함께 구체구의 물은 중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자연이라고.
구체구는 아홉개의 티벳족 부락을 지칭하는 말로, 관광지 개발로 지금은 세 개 부락만 남아있다.
해발 3천미터 이상의 산에서 숨어 산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티벳인들을 장족(藏族)으로 부른다.
길 가다 지치면 벌렁 드러누워 쉴 수 있는 여유가 부럽다.
마음에 드는 곳에 발걸음을 멈추고 실컷 쉴 수 있는 여행을 꿈꾼다.
헤엄치고 싶다. 저 물 속에서 한 마리 숭어처럼 노닐고 싶다.
그러나 꿈 깨라. 석회수라 물고기 한 마리 살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그 이유 때문에 저런 물빛을 간직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있다는 게 감사하고, 해발 4천미터에도 끄떡없는 내 몸이 기특하다.
고소증이 어떤 건지 경험해보자 싶어 배짱 좋게 약을 안 먹었더니 약간 호흡이 가쁜 정도였다. 특히 셔터 누를 때.
현실과 반영이 헷갈릴 정도로 맑디 맑은 구체구의 물빛.
생각보다 사진을 많이 담지 못했다. 아니, 담지 않았다.
눈에, 가슴에 많이 담기 위하여.
사진에 매료되면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에 사진을 그만 둔 사람도 있다.
지금 내 눈 앞의 풍경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고, 사진은 보너스로 생각하고 싶다.
실제로 얼마나 잘 찍은 사진들이 많은가. 지구상에서 하루에 쏟아져나오는 사진이 1억장쯤이라는데... ㅎㅎ
해발 2,500 미터의 호텔에서 이틀밤을 잤는데, 밤에 추워서 오돌오돌 떨었다.
날씨는 더없이 청명하고 쾌적했지만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고 고산지방 특유의 쏘는듯한 햇살에 눈이 시었다.
티벳족들은 해발 3천미터 이상에 살면서 한겨울에도 난방을 안 한다니... 상상초월~
풍경 속에 너도 나도 그림이 되는.....
형용사가 많은 게 우리 말의 특징인데, 이런 물빛을 무슨 색이라고,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사랑은 건널 수 없는 강을 서로의 사이에 흐르게 하거나
가라지풀 가득한 돌자갈밭을 그 앞에 놓아두고 끊임없이 피흘리게 합니다 <도종환>
우리 민족은 우주 생성의 근본이 되는 색을 오방색(청, 백, 적, 흑, 황)이라고 했는데
티벳 민족은 적, 황, 청 등의 강렬한 색깔로 자연에 대한 감사와 자신들만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평생 로션 한 번 발라본 적 없는 티벳 여인. 햇살에 그을린 건강한 혈색이 참 아름답다.
'여행은 즐거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안, 풍문(風紋)을 찾아 (0) | 2014.06.10 |
---|---|
지리산 안부 (0) | 2014.05.05 |
흑매 알현기 (0) | 2014.04.02 |
공곶이에서 서이말까지 (0) | 2014.03.29 |
안개길 꽃길 (0) | 2014.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