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국이 낭자하게 핀 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다 쉬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옥이 아이가?" 뒤 돌아보지 않아도 금방 알만한 얼굴. 이십년지기 내 산친구-

산악용 자전거에 헬멧까지 쓴 그녀는 매일 왕복 30키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스포츠 매니아.

짤막한 안부 끝에 그녀와 나는 갑자기 야영을 작당하게 되었다. 이 좋은 날, 산에 가서 하룻밤 자자!!!

 

박배낭(야영 장비를 넣을 수 있는 큰 배낭)을 메고 가는 사람만 봐도 눈길이 머물던 나. 오늘은 나도 그 속에 있다.

하늘은 왜 그리도 청명한지. 구름은 왜 또 그리 다이나믹한지.

얼음골케이블카에서 내려 샘물산장까지, 그리고 그녀가 찜해둔 사자평 야영지까지.

드넓은 고원에는 메마른 억새 사이로 올라오는 새순들이 한창이었다.

해발 천미터의 청량한 바람, 텐트 위에서 울어대는 뻐꾸기 소리, 향기로운 산꽃들.....

황홀한 일몰도 눈부신 일출도 아니었지만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이미지로 남은 산정의 하룻밤.

 

 

 

 

 

<산정 에피소드>

억새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참나물을 뜯다가 알을 품고 있는 꿩을 만났는데

햐! 이 녀석 봐라. 사람이 근처에 갔는데도 '나 죽었소'하고 꼼짝도 않는다. 알을 지키려는 어미 본성이다.

"너, 꿩이 얼마나 숭악한 넘인줄 아냐? 저것들이 아주 웃겨 야~" 순천 사투리로 풀어놓는 친구의 썰~

어느 숲길에서 어린 새끼들을 종종종 거느리고 가는 까투리를 만났더란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발을 멈추는 순간

꿩 새끼들은 오른쪽으로 줄지어 도망가고 어미는 갑자기 다리를 절뚝거리며 왼쪽으로 달아나는 거였다.

다리를 절며 적을 유인하고 새끼들을 살리려는 그 지혜가 놀라워 친구는 소름이 끼치더라고...

머리 나쁜 사람을 누가 새 대가리라고 놀렸으까?

목숨을 바쳐 새끼를 지키려는 게 어미들의 본성인가. 근데, 지 새끼 놔두고 남의 둥지로 날아가는 것들은 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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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 아들은 연월차까지 내서 부모 만나러 내려온다던데 나는 역귀성이다.

녀석이 내려오는 것보다 내가 올라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ㅎㅎ

어린이날 기념으로 우리집 어린이 모시고 관악산에 올랐다. 들머리는 서울대학교 캠프스 내 자운암.

십수년 전 과천에서 올랐던 연주대 조망은 그야말로 오금이 저렸었는데.....

 

 

 

 

그때의 서울보다 지금의 서울은 5배쯤 커진 듯하다. 아니, 그 이상일까?

한눈에 다 담기도 어려운 방대하고 광활한 도시, 빼곡한 빌딩숲.

저 미니어처 속에서 천만 명의 개미들이 살고 있단 말이지.

조불급석(朝不及夕), 아침에 저녁 일을 보장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단 말이지.....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바위 틈으로 용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는 나무가 기특하다.

온실 속에 자라도 꽃을 못 피우는 나무가 있고, 바위 틈에서도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나는 아마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인생을 무성의하게 살아온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신에 우리집 두 남자가 두 배나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그냥 묻어가는 셈이다 ㅎ

 

 

 

 

하이엔드카메라로 찍었더니 색감이 어색하다.

CCD 오염이 심각하다는 걸 컴퓨터에 올려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여길 또 오겠나. 조불급석인데ㅎㅎ

 

 

 

9부 능선쯤에서 갈등이 생겼다. 눈 앞에 보이는 암릉 구간이 위험천만이다.

나는 아들을, 아들은 나를 염려하는 눈치다. 예정없이 산에 오느라 둘다 운동화를 신은 까닭이다.

나 혼자라면 가겠는데.... 아들도 아마 그리 생각할 것이다. 이럴 땐 내가 선수를 쳐야 한다.

얘, 그만 가자. 저 꼭대기 올라가봤자 별 거 없어. 조망은 여기서 다 봤잖아~

 

자운암 날머리엔 초파일을 앞두고 색색의 수박등이 탐스럽게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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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추위가 몰려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그닥 사납지 않았다.

삐걱대는 관절에게 당근을 줄 것인가, 채찍을 줄 것인가.

당근을 주면 몸이사 좋아하겠지만, 점점 게으르고 둔해질 게 아닌가. 나는 냉혹해지기로 했다.

밀양 남명에서-아랫재-운문산(1,188m) 왕복 6키로, 4시간.

응달엔 얼어붙은 잔설들이 반질거리고, 해발 1천고지 부근은 칼바람이 피부에 팍팍 꽂혔다.

정상까지 가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적요한 겨울산의 민낯을 보러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화려한 용모를 자랑하는 사람 곁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연무가 드리운 하늘 멀리 어깨를 나란히 맞춘 문수산, 남암산.  울산의 관문답게 의연하다.

아득한 저 하늘 아래 울고 웃던 30여년이 잠겨있다.... 한세월, 잠깐이었구나. (20150208)

 

 

 

 

사진이 재미가 없어졌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영원히 재밌는 게 어디 있을라고?

사진에 흥미를 잃었을 수도 있고, 사람에게 실망했을 수도 있지.

혹은 사진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정은 외길이라 많은 것들을 동시에 사랑할 순 없으니.

마음 가는대로 살아요. 그대 마음 향하는 그곳에 사랑과 행복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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