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까지 갈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중간에 내가 안 보이면 먼저 하산한 줄 알라고 일행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었다.

작년에 딱 두번 산에 갔는데, 다녀온 이후 무릎이 너무 아파 두번 다시 산에 못 갈줄 알았다.

 

 

 

 

고헌산(1,033m) 주능선을 바라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나무들이 벗은 몸으로 해바라기를 즐기는 겨울산은 양탄자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손이 시려워도 폰카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언제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뭔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건 인간들만의 어리석은 욕심일지 모르지만.

 

 

 

 

응달엔 잔설이 남아있는데 바람은 달고 시원하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길은 돌이 별로 없을 정도로 평탄하고 부드럽다.

고헌산 서봉(1,035m)으로 이어지는 두 시간 남짓의 등로는 그야말로 실크로드였다.

느릿느릿 걷다가 조망이 보이는 곳에선 실컷 쉬고, 그렇게 걸었던 덕분인지 하산 후에도 무릎이 말짱했다.

 

 

 

 

그럭저럭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인연들. 불같이 뜨겁지도, 얼음같이 차갑지도 않았던.....

사람 사이는 그래야 오래 가는지도 모르겠다.

 

 

 

 

고헌산 아래 집을 지은 그녀는 닷말짜리 항아리 여섯 개를 들여놓았다.

그녀의 손맛에 반한 지인들이 된장을 주문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된장아줌마가 될 것같다.

건강만 따라준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가.

 

 

 

'산으로 가야겠네' 카테고리에 다시 게시물을 올리게 될 줄 몰랐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다시 희망을 가지며. (2014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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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케이블카 타고 설경 보러 댕길줄 우찌 알았겠노. 예전같으면 쥐구멍 찾을 일이재. 참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재.

얼음골 케이블카에 이용객이 그마이 많다 캐도 전혀 구미가 동하지 않았는데... 나도 인자 이빨 다 빠졌데이~

 티켓 한장이면 해발 천미터 근처로 데려다주는 케이블카가 울매나 고마븐지 어제 처음 알았다 아이가.

 

 

 

 

사람의 습관이랄까, 의식이랄까 그런 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구마.

사자평 억새와 물매화를 그리워하면서도, 눈덮인 영남알프스를 상상하면서도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면 된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해봤다 아이가.

산은 반드시 걸어서 올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나도 몰래 갖고 있었던갑재. 융통성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산 위에서 남난희 생각이 계속 나더마. 그녀와 자일파트너였던 친구를 며칠 전에 만났거등.

가슴 한켠에 아련하게 자리한 연민으로 요 며칠 계속 마음이 아푸다.

 

70년대 산에 길도 제대로 없던 시절, 한겨울 백두대간을 단독종주했던 남난희. 얼핏 보면 남자같이 생겼재.

눈이 허리까지 빠지는 겨울산에 텐트를 쳤는데 달이 너무 밝아 잠이 안 오더라 카더마.

심심해서 텐트 밖으로 나와 눈사람을 만들라캤는데 눈은 안 뭉쳐지고... 우는 것 밖에 할일이 없더라나.

굶주린 멧돼지떼의 습격을 피하느라 텐트속에서 밤새 코펠을 두들겼던 일,

올무에 걸려 거꾸로 매달려 부상으로 절뚝 절뚝 걸었던 눈길...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조이고 아팠다 아이가.

 

 

 

 

어떤 여자 엉덩이 닮았재?

 

 

 

 

생각이나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친구가 필요한갑다.

내 혼자서는 케이블카 탈 생각도 몬했을낀데 벗들이 있어 10분만에 하얀 능선에 섰다 아이가.

휴게실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마치 내가 몽블랑 정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더라 카이~

창 밖으로 펼쳐진 영남알프스의 설경과 실뱀처럼 기어가는 울밀선 도로가 울매나 멋지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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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당신 밖에 없네. 내 마음 부려놓을 곳, 내 마음 맡길 곳.

칼칼한 날씨에 바람은 냉큼 귀를 베어갔지만 당신 곁에 서는 순간 머리가 맑아지는 이 느낌!

사람 사이에 부대끼는 것보다 자연 속에 온전히 나를 담구는 시간들이 참 편안하다.

 

 

 

 

손이 시리다 못해 저리지만, 숨차게 오르다보면 어느새 후끈후끈 열이 나고 몸이 풀린다.

상처도 고통도 그런 게 아닌가 몰라.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 결국은 자가치료가 답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를 빼놓고 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나는 산으로 가야겠다.

 

 

 

 

수없이 오르내린 저 길. 멀리서 바라보면 위험천만이지만, 길 위에 있을 때는 즐겁기만 했지.

재약산 차마고도를 오르며 초코파이 한 통으로 한 나절을 버텼다. (1/26)

 

 

 

앙칼진 날씨를 제대로 느끼고 싶어 나섰다가.

 

 

 

 

창좌마을 정미소.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자물쇠를 따주며 말했다.

"우리 영감이 지은 집이데이. 30년 넘게 정미소를 돌렸는디 인자 허리가 꼬부라져 몬하겄다~"

 

 

 

 

황토벽에 덧댄 함석은 비바람에 녹슬어 금방이라도 삭아내릴 듯하고...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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