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色은 수필
노후대책 필요하세요?
지우당
2009. 8. 21. 06:52
[태화루]노후대책 필요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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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생활을 위해 최소한 3억에서 10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보험회사들 덕분에 경제적인 걱정이 더 깊어졌지만, 모든 걸 하나도 잃지 않고 지금처럼 다 누리고 싶은 욕심이 생각의 근저(根底)에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나간 날에 대한 후회나 다가올 날에 대한 걱정만 빼면 인생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일설에는 대기업 직원들이 울산 인근의 땅값을 죄다 올려놓았다고 한다. 울산에서 서생까지는 자동차회사 직원들이, 경주까지는 조선회사 직원들이, 경산까지는 화학공단 직원들이 땅을 많이 사두었단다. 실제로 울산 인근엔 땅값이 비싸 중소기업에서 공장 지을 엄두를 내지 못 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일찌감치 노후 대책을 세워놓는 건 좋은 일이지만 노후를 위해 현재를 배고프고 초라하게 살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월급에서 무조건 보험료부터 떼놓고 생활비가 모자라 쩔쩔매는 사람을 보면 융통성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살다보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이지만,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인 한 분이 몇 년 전 근교에 땅을 사더니 작년에 집을 지었다. 땅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얻어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주말마다 텃밭에 가서 일하고 오는 눈치다. 유리지갑 같이 빤한 월급으로 참 대단하다 싶었더니 어느 날 취중진담을 쏟아놓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좀 조용하게 살아보려고 시골로 들어갔더니 주말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겁니다. 놀러오는 사람들은 바람 쐬는 기분으로 가볍게 오지만 내 입장에서는 손님이거든요. 어떨 땐 하루종일 손님 뒤치다꺼리 하느라 쉴 시간이 없어요. 여름휴가 때도 친척들이 몰려와서 나는 하루도 못 쉬었어요. 내가 왜 집을 지었나 싶어 후회가 된다니까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담보를 끼고 집을 지었으니 매달 은행 이자는 꼬박꼬박 나가지, 두 집 살림을 하니 생활비도 많이 들지, 가계부는 늘 적자고 빚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쫓기는 생활을 하고 있나 싶어서 다 포기하고 집을 팔아버릴까 궁리하고 있는데 이번엔 마을 사람이 그 집 앞에 새 집을 지었다. 조망권 조차 뺏겨버린 그는 시름에 잠겨 자신의 섣부른 노후대책을 후회하고 있다. 퇴직하면 고향에 가서 낚시나 다니면서 푹 쉴 거라고 장담하던 어떤 분은 낙향한 지 1년만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어릴 때 뛰놀던 아름다운 고향은 마음속에만 있을 뿐, 실제 고향에는 노인들만 남아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더란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는 노인들을 두고 혼자 낚싯대를 둘러메고 다니니 마을 사람들이 좋게 볼 리가 없다. 젊은 놈이 빈둥빈둥 논다고 눈치를 주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란다. 나도 가끔 남편과 노후에 대한 얘길 나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나 미리 귀농준비를 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퇴직 후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고향은 멀리서 그리워할 때 아름다울 뿐, 실제로 돌아가기엔 꿈과 현실의 괴리가 많을 테니까. 은퇴 후에 반드시 유토피아를 찾아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지금 살고있는 곳을 유토피아로 삼으면 된다. 왜 멀리서 찾아 헤맬까. 우리는 미리 걱정하지 않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자연스럽게 노후를 맞이하기로 했다. 적게 벌면 적게 쓰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로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수입이 줄면 쓰임새를 줄이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조용히 물처럼 흘러가면 된다. 많은 것을 갖고도 그걸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한 생각이 든다. 나도 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할 수 없어 부끄럽지만. 강옥 /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