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色은 수필

고진고래(苦盡苦來)

지우당 2016. 12. 18. 13:42



   

세상살이 힘겹고 지쳐있을 때 용기를 주는 낱말로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있다.

역경을 헤치고 나온 사람들의 일화에 잘 따라붙는 이 사자성어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쯤으로 알려져 있다.

진정 고난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것일까, 괴로움의 끝에는 반드시 행복이 있는 것일까. 나는 가끔 회의적이다. 아니, 자주 의심하고 반문한다.

인과응보가 철칙이 아닌 것처럼 고진감래도 그저 듣기 좋은 말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닐까. 마치 쓴 약을 먹기 좋게 당분으로 포장한 알약처럼.


고진감래라는 당의정을 믿고 팔십 평생을 살아오신 이모님이 얼마 전 외아들을 잃었다.

위로 누나 셋을 둔 마흔세 살의 외아들. 아직 미혼이었고 혼자 객지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출근길에 쓰러져 그대로 가버렸다.

그는 팔순 노모의 마지막 희망이었고, 집안의 기대주였다.

외가에서 큰딸이었던 내 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이모는 마음씨, 솜씨, 맵씨 좋기로 근동에 소문이 자자했었다.

어린 시절 이모가 만들어준 원피스를 입고 나가면 온 동네 아이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양장점에 일하러 다니면서 푼푼이 모은 돈으로 조카들 옷을 지어주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어주던 이모.

그 이모의 일생은 한 마디로 감진고래(甘盡苦來)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달콤했지만 남편을 잘못 만나 쓰디 쓴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이모는 친정 부모에게 누가 될까봐 힘든 내색도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백수건달이나 다름없는 남편을 대신해 방직공장에 다니며 4남매를 키운 이모는 큰딸에게 기대가 컸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믿고 큰딸이 어서 자라 동생들을 건사하길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빚을 내서 공부시킨 큰딸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집을 가버렸다. 둘째딸도 셋째딸도 이모에게 결코 살림밑천이 되지 못했다.

이모는 평생 방직공장 노동자로 살았고, 노후에는 둘째딸 가게를 도와준답시고 굽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외아들이 결혼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여자가 이 집안에 들어와 어머니의 고난을 감싸주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이모는 너 좋아하는 여자 만나면 된다. 나는 너한테 짐 되기 싫다.” 무수히 말했지만 아들의 귀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을 게다.

이모는 세 딸에게 받은 실망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고 고통과 환란 속에서도 늘 희망을 이야기했다.

큰 사위가 파산을 해서 교직에 있는 딸의 월급까지 차압이 들어왔지만 사위를 원망하지 않았고,

작은 딸이 학교 앞에 문방구점을 차려 어린아이를 맡겼어도 말없이 거두어주었다.


시집보낸 딸들의 뒷바라지까지 알뜰하게 해주며 치매 초기의 남편을 수발하던 이모.

몸피가 줄어 한줌이나 될까 말까한 그 이모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진감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생 끝에 낙이 있을 거라고, 세상에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고 믿던 보살이었다.

그 보살의 마지막 희망에 작살을 꽂은 것은 누구일까, 무엇 때문일까. 왜 이모는 감진고래를 넘어 고진고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세상사 인과응보도 믿을 바 못되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자신만의 숙명이 있는 건 분명하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카르마(Karma, )라고 풀이한다.

착한 사람들이 고통 받고 악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은 현생뿐만 아니라 전생의 행위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회를 전제한다면 이 말이 맞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도 모르는 내 자신의 과거에 대해 왜 내가 책임을 지고 벌을 받아야 하는가?

기억에 남아있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전생의 대가를 하필이면 왜 지금 내가 다 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이모는 자주 그런 말을 했다.

거듭되는 불운이 남의 탓이 아니고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 힘없고 착한 사람들은 그렇게 슬픈 운명에 복종하고 끌려가게 되어있는 것일까.

외아들을 잃고도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이는 이모를 보며 아픔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도 일생에 한번쯤은 행복해야 하지 않는가?

살다보면 감진고래의 세월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끝끝내 고진고래(苦盡苦來)는 아니어야 하지 않는가?


돌아보니 내 인생은 단맛과 쓴맛이 뒤섞인 평탄한 오르막이었다. 자잘한 굴곡은 있었지만 크게 보면 평범하고 무난하게 시류를 따라 흘러왔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 비하면 국가도 국민도 엄청나게 잘 살고 있으니 나 또한 잘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살았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시대,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공손한 시대, 백짓장도 맞들면 찢어지는 시대에

행복은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일까.


어린 시절 느티나무 아래에서 노래를 가르쳐주던 착한 이모가 돌연사한 아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낸다고 알려왔다.

죽은 아들을 위해,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을 막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이모에게 잔인한 고진고래는 없을 것이다.

외삼촌 말마따나 참 복도 없는 이모, 그 마음 씀씀이라면 내세에 넘치도록 많은 복락을 누릴 거라고 믿어볼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