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게 말 걸기

디카시 습작 1

지우당 2019. 7. 17. 08:17

 

 

 

 

섬진강

물안개 피워 차나무를 키우고

재첩, 참게, 벚굴, 속살에 품은 채

오늘 햇살의 카드섹션을 펼치고 있다.

 

 

 

 

바람의 전언

사느라 애썼다.

집게도 더듬이도 잃고 여기까지 오느라

삶의 좌표는 어느 바다에 두고

 산산이 부서질 육신이여.

 

 

 

안개주의보

이정표는 있으나마나

삶은 늘 안개 속이었다.

잠시 걷히나 했더니 또 다시 안개.

 

 

 

동변상련

연고를 찾고 있는 묘지 옆에

무연고 늙은 고양이

여기서 잠들면 누가 내 연고를 찾아주나요?

 

 

 

 삶

열 길 물 속으로 내려가

밥을 벌며 살아도

알 수 없어라, 한 길 사람 속이여

오늘도 생의 파도 높기만 한데

 

 

 

 

 

만추

오늘 첫 키스 기념일

축복처럼 은행잎 내려와 앉아

저들의 사랑 증거하고 있네

 

 

 

비전(Vision)

별을 보고 가는 사람은 외롭지 않지

생의 난간에서 위태롭게 흔들려도

다만 별이 거기 있으므로

 

 

 


위안

 

오남매 키워낸 집

장독간엔 빈 독만 늘어나고

홀로 남은 노인네 적적하실라

 마당 가운데 오두마니 채송화 핀다.

 

 

 

진실과 사실

때로는

진실보다 사실이 강렬하더군

반영의 미혹처럼

 

 

 

봄날

무르익은 봄이 굴러간다

바퀴에 휘감긴 세월

아름다운 치명상이여

 

 

 

 

 

독야청청

뒤틀리고 휘어져

몸피를 불릴 수도 없었다

상처를 다독이는 동안

또 다시 눈보라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무슨!

 

 

 

 

 

생존

어떻게 살아왔냐고 묻지 마시라

발가락도 잃고 뒤뚱거리는 생애

생존보다 절실한 건 없었다

 

 

 

시늉 뿐인 널판때기 두 장

언제라도 걷어차면 그만인데

우직한 순종 끝에는

다만 밥이 있을 뿐.

 

 

여생

사월에도 등이 시린 노모

추운 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겠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어

오뉴월에나 솜옷 벗으시려나.

 

 

 

 

 

독거

짧은 햇살에

빨래를 몇 번이나 뒤집어 널며

무료를 건너간다

혼자 남아 잘 살면 무슨 재민겨

야속한 할망구.

http://www.uj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182#_enliple

 

 

 

한낮

백구야, 너는 전생에 참 잘 닦았구나!

 

 

 

슬픈 기형

사람보다 가축에 가까운

살아있는 농기구

하루라도 일을 안하면

 관절마다 아우성을 지른다.

 

 

 

 

염색하는 날

바람구두를 신고 살았던 남자

어느새 귀가 저리 순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