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일기
"Music Collections for Kang Ok"
하얀 CD케이스에 적힌 글씨. 작년 6월, 첫만남을 기념하여 K가 만들어준 CD를 플레이어에 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녹음한 CD를 선물하는 게 취미라던 그 사람. 지금까지 수십 장의 CD를 만들었다고 했지.
첫 곡으로 조수미의 "Love is just a dream"
'꿈이었나, 나를 떠난 날이...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어...'
바닥에 앉아 천천히 무릎을 굽히면서 뒷꿈치를 엉덩이 쪽으로 끌어당긴다. 90도.... 110도 쯤에서 더 이상 무릎은 굽혀지지 않고... 다시 다리를 뻗고 쉬었다 서서히 굽히며 같은 동작 반복.
노래를 들으며 나는 무릎 재활운동 첫 단계로 들어섰다.
K는 모르겠지. 그가 녹음해준 음악들이 재활운동 보조 프로그램으로 쓰일 줄은.
Leonard cohen의 "Nancy"
막내동생이 좋아했던 노래. 음유시인처럼 읊조리듯 노래하는 레오날드 코헨의 저음이 오늘따라 더 묵직하다. 마치 내 다리처럼.
두 번째 재활운동은 다리를 곧게 편 상태에서 대퇴근에 바짝 힘을 주는 것.
수술 후 4주 정도면 근육의 40%가 손실된다고 한다. 재활운동으로 근육을 되살리지 않으면 회복이 그만큼 어렵다고...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한영애의 '건널 수 없는 강'
언제 들어도 매력적인 목소리. 터프하고 반항적인, 그러면서도 섹시한 음성의 한영애.
다리를 편채 바닥에서 20센티쯤 들어올려 잠시 멈췄다 내리기 반복.
한 곡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한가지씩 재활운동을 하기로 했다. 지루하지 않게.
얼마전, 무릎환자를 위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스키 타다가, 축구하다가, 발레하다가 무릎을 다친 사람들... 생각 외로 많았다. 국내외 유명선수들의 일화, 유명 의료진 리스트까지... 상세한 자료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재활운동도 거기서 배웠다. 동병상린의 심정으로 그 많은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람이 고맙기만 하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노래는 서서 들어야 제맛이다. 뒷꿈치를 들어 엉덩이까지 한쪽 다리를 들어올리고 잠시 멈춤.
다리가 덜덜 떨린다. 몇 번 계속하니 반대편 무릎에도 통증이 온다. 한쪽 다리에 하자가 생기니까 반대편 다리에 체중이 쏠려 성한 다리조차 아프다. 휴~ 땀 난다.
수술 전에 내가 그 홈페이지를 보았다면 수술하는데 신중을 기했을 거다. 혹 주변에 무릎 수술을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뜯어말리고 싶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Celine Dion의 "My heart will go on"
아들이 노래방에 가면 잘 부르는 노래. 타이타닉 주제곡으로 쓰였지.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 위에서 연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디카프리오... 진실한 사랑은 그렇게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아낌없이.
두 무릎을 30도쯤 구부리고 잠시 정지, 다시 제 자리로... 아이구, 더 힘들다.
노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5분12초, 아휴, 너무 길어!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
빗방울이 떨어지는 어느 봄날이 그려진다. 후리지아 향기가 어디선가 풍기는 듯.
엎드려서 다친 다리를 쭉 펴고 위로 들어올린다. 잠시 정지 후 다시 내리고...
정상인이라면 식은죽 먹기겠지. 하지만, 하지만...내 다리는 어렵게 올라간다. 나도 몰래 신음소리가 난다. 끙~ 이렇게 살아야 하나? 진땀이 다 난다.
"Free as the wind"
영화 '빠삐용' 주제곡으로 삽입됐던 음악. 자유를 향한 빠삐용의 야망이 느껴진다. 바위 절벽에서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장면, 망망대해를 향해 방향도 없이 떠가던 그 남자의 자유혼.
마무리 운동으로 의자 끝에 걸터앉아 다리 들어올리기. 바닥과 수평일 때 멈추었다 다시 내려놓는다. 이쯤이야 싶었는데 열 번쯤 계속하니 무릎에서 신호가 온다.
몇 가지 동작을 계속하는 동안 음악은 내 마음보다 몸을 치료해주고 흘러갔다.
"누님, 좋아하는 음악 제목을 적어주시면 며칠 내로 녹음해 드릴게요."
K의 천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참 맑고 깨끗한 사람이다. 그가 나에게 CD를 전해줄 때처럼 나 또한 그에게 받을 것을 생각지 않고 주고 싶다.
(웬만큼 다리가 나으면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잔 거하게 하자구! 노래 잘하는 와이프도 함께 와. 자네는 기타를 치고, 우리는 노랠 부리지. 작년 6월, 처음 만났을 그때처럼 말야.)
<하루하루가 기적같아라>
"우측 슬부 전방 십자인대 파열 및 반월연골 파열"
의사의 소견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내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연골(물렁뼈)이 찢어졌다는 얘기다. MRI 판독 결과 수술 안할 수는 없다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사연을 얘기하자면 타임머신 타고 2년반 전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나는 벌써 세 번째 무릎 부상을 입은 거였다.
"40대 여자분이 이렇게 많이 다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이 보통 이 정도 부상으로 수술하지요."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얌전하게 보이는 아줌마가 왜 다쳤을까?)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참담했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왜 하필 나야? 왜? 왜?
세상 모든 사람이 다리 멀쩡하게 잘 걸어다니는데 왜 내 황금의 다리만 고장이 난 거야?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나는 수술대에 누웠다. 무릎에 구멍을 뚫고 관절경을 삽입해서 생체 인대를 이식하는 수술, 물렁뼈를 깁는 수술. 전신마취 3시간 이상의 고난도 수술이었다.
마취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해 혼났다. 남편과 내 친구들이 눈을 까뒤집고 뺨을 때리고 야단법석을 부렸다. 12년전 제왕절개 수술할 때만 해도 마취에서 쉽게 깨었는데...그때만 해도 젊었던가? 어느새 내 몸은 가을이었다.
수술 후 만 하루만에 침대에서 내려섰더니 병실 동료들이 깜짝 놀란다. 사흘 정도는 누워 있어야 한다나?
치료하면서 붕대를 풀어보니 내 무릎에는 구멍 뚫린 자국이 네 군데였다. 이제 스커트 입기는 텄다. 하긴,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나이에 치마를 입겠냐만.
정형외과 수술이 참 많이도 발전했나 보다. 깁스 과정을 생략하고 보조기를 착용하라고 한다. 무릎 뼈를 고정시키는 장치로서 2주 정도는 무릎에 차고 다녀야 한다고.
무릎 수술에서 자타가 공인한다는 대학병원 교수님 왈, 수술은 성공적이나 연골 때문에 상당기간 조심을 요한다고... 무리한 충격을 주지 말라나? 3개월 후면 조깅할 수 있단다.
병실에 있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게 신기했고, 하루하루가 기적 같았다.
병실환자 7명 중에 교통사고 환자가 3명이었는데, 무면허 음주운전 차량에 받쳐 7번 수술을 받은 환자, 학교 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치여 9시간 대수술 받은 여학생... 등등 목불인견의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재활의학과를 통해 우리 병실에 하룻밤 묵다 떠난 22살의 처녀는 뇌성마비였는데 갑자기 근육이 경직되면서 발잘을 일으키는데 그 부모들이 붙잡고 울면서 이러는 거였다.
"울지 마라. 아가... 네가 자꾸 울면 바다에 빠트려 버릴거야.... 다른 환자들이 잠 못자잖니."
그 부모의 가슴은 아마도 새까맣게 타버렸겠지.
새삼스럽게 나와 내 가족이 그동안 누려온 건강과 행복이 귀하게 느껴졌다. 아니, 나의 현재 처지가 전혀 비관스럽지 않았다. 남편이나 아이가 다친 것보다는 낫다. 다리를 절단한 것 보다는 낫다. 석달동안 산에 못간다고 어디 덧나나? 기나긴 인생에서 3개월, 별 거 아니야!
소설가 양귀자가 '모순'에서 이런 말을 했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 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친정이며 시댁 주변에서 놀랄까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입원했는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온동네 여자들이 위문공연 한번씩 다 다녀가고... 나는 참 행복했다.
더군다나 산사랑 울산 회원들의 기발한 위문공연은 나를 눈물짓게 했다.
싱싱한 가을 전어에다 오징어회, 병실에 금지된 쐬주까지 사 들고 위문공연을 벌인 산고동과 구드리, 주전바다님... 병실에 길다란 의자 펴놓고 환자 보호자 다 모아놓고 술판을 벌이다 인턴들한테 쫒겨날 뻔했다.
평소 보석의 품위 유지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는 산그늘 님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으로 내 불면의 밤을 채워주었고.... 결정적으로 산골소녀의 선물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장식용 초 3자루와 프랑스산 적포도주를 들고온 산골소녀, 퇴원하기 전날 밤에 병실의 형광등을 모조리 끄고 그 촛불을 밝혀 포도주 파티를 벌였다.
다리병신 팔병신 허리병신 모두 모여 포도주 한잔씩 하고 분위기에 취해 노래까지 불렀다.
나더러 퇴원 기념 노래 한 곡조 하래서 '제비처럼'을 신나게 불렀다. 앵콜은 당근이었쥐~
간호사가 달려왔다. "정형외과 여자 환자가 술 파티하는 건 첨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심각한 후유장애가 예상되는 환자들이었지만 마음이 참 밝은 사람들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있는 게 정말 기적같다고 입을 모은다.
나 역시 지난 8년동안 멋모르고 이산 저산 쏘다닌 세월이 고맙기 짝이 없다.
오늘 퇴원해서 집에 와 가장 먼저 산사랑에 접속했다. 여기 있는 애인들이 그리워서....
1주일동안 병원에서 4백만원 깨먹고 돌아왔지만 아깝지 않다. 4천만원, 아니 4억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산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맞지? 산친구 여러분, 내 말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