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B공대 면접을 보고 왔다.
학습 문제 하나를 풀고 인성 면접을 받았다고 한다. 면접관의 질문은,
‘최근 모 기업에서 핵심기술을 타사로 빼돌린 사건이 있었다.’고 전제한 뒤
“만약 귀군이 어떤 회사에 근무하면서 독보적인 기술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데도
사장이 그 공을 인정해주지 않고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들은 씩씩하고 당당하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사장님과 충분히 대화한 후, 그래도 시정이 안된다면 회사를 옮기겠습니다.”
교수의 눈이 둥그래지더란다. 뭐라구? 아들은 한 술 더 떠서,
“내 머리에서 나온 지식을 회사에 바쳤는데 회사가 그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만둘 수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면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서 아들은 문득 자신이 대답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단다.
소위 인성면접인데 교과서처럼 착하게 말해야 하는 건데... 싶더란다.
함께 간 친구들에게 얘기했더니 애들이 모두 뒤집어지더란다.
“야, 너 그걸 대답이라고 했냐. 댓가는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근무한다고 말해야지.”
집에 와서 아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자신의 생각대로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감점 당했을 것 같단다.
나는 생각한다. 참, 어떻게 저런 반골기질까지 나를 닮는단 말인가?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돌려서 말할줄 알아야 한다는 걸
왜 나는 가르치지 못했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부나 거짓말도 할줄 알아야 한다는 걸 왜 나는 가르치지 못했나.
아니, 그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고 본능적으로 깨닫는 게 아니던가?
“아들! 대답 잘했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너에게 좋은 점수를 주겠다.
넌 최소한 거짓말은 안했잖아.”
아들을 위로하면서도 속으로 녀석의 반골기질이 은근히 걱정된다.
저 녀석, 대학 가서 운동권에 가담하는 거 아냐?
한때 나도 반골기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지금도 세상살이 만만찮은데...
제도권과 불화하면 결국 외로운 아웃사이더가 될 뿐인데...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아들의 면접 얘길 했더니 반응이 나하고 똑같다.
“정직하게 대답 잘했네. 인성면접인데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아전인수라더니, 역시 사람은 제가 보고싶은대로 보는가 보다.
세 식구에게 공통으로 흐르고 있는 반골 유전자에 입맛이 쓰다.
여고3년때던가. 히스테릭한 영어교사가 있었다. 밤늦게까지 수업을 하는데 얼마나 신경질을
부리는지 도저히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선생님, 제발 신경질 좀 내지 마세요. 이건 수업이 아니라 고문이에요.
왜 우리가 비싼 수업료 주고 선생님의 신경질을 받아내야 해요?”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야! 너 이리 나와!”
씩씩하게 걸어나간 나에게 선생님은 들고있던 지시봉을 휘둘렀다. 딱, 하고 막대가 부러졌다.
피가 주르르 흘렀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나를 붙잡았다. 피를 뚝뚝 흘리며 옥상으로 옮겨졌는데
그때 하늘에 별은 왜 그리 많았는지...
턱을 몇 바늘 꿰맨 그날의 사건 이후 영어선생은 두 번 다시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과잉체벌로 교단에서 �겨날 일이지만 그때만해도 교단이 어두웠다.
살아오면서 가끔 자신의 기질에 대해 반골이라는 자각을 할 때가 많았다.
타협할 줄 모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죽어도 하지 않는 성질.
세상 살면서 참 많이도 상처받고 손해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의의 사도나, 지고지순한 완벽주의자도 아니면서 왜 그랬을까?
목구멍에 뼈가 거꾸로 솟아있었다는 촉나라 장수 위연,
그의 반골을 보고 위험한 인물임을 간파한 재갈량 때문에 그는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위연에게 모반 의도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
반골은 좋게 말해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저항하는 기질’을 뜻하게 되었다.
위연의 죽음에서 연유된 ‘반골’이란 낱말이 험한 세상 헤쳐 나갈 내 아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아들아,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부디 바람풍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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