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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를 듣고도 길 떠나는 낭만파가 나 말고 또 있을까.

남쪽에서는 비가 울진쯤에서 진눈깨비로 변하더니 강원도에선 눈으로 진화했다.

교통방송에서는 영동지방 대설주의보를 대설경보로 대치한다고 호들갑을 떨고있다.

내심 불안하지만 ‘악재가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용기백배 떠난 길이 아닌가.

차창으로 날아드는 눈발이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입체영화를 보는 듯,

우주에 떠도는 수많은 별처럼 눈송이가 눈앞으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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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해안도로-정동진-대관령박물관-대관령 양떼목장-월정사 전나무숲길-방아다리약수-구절리 레일바이크-오장폭포-송천 드라이브코스-예수원-강원랜드(하이원)-정선 장터-동강 어라연-청령포-장릉-서강 선돌-영월 책박물관-선암마을-판운리 섶다리-요선정

                                                                                           

2박3일 겨울여행을 환상적으로 설계해주신 교주님은 지도 위에 번호를 매기고

상세한 지리 지형은 물론 볼거리 먹거리 특산물까지 세심하게 일러주셨다.

그 정성과 배려를 생각하면 어떤 천재지변이라도 뛰어넘었어야 했는데...

해신당의 에로티시즘에 빠져 문풍지 사이로 사진 찍느라 엉뚱한 시간을 보내고

삼척항에서 곰치국을 찾아 헤매느라 또 시간을 허비했다.

저마다 원조 곰치국이라고 우기면서 정작 식당에 들어서면 곰치국이 없다.

“요즘 곰치가 안 잡혀서 비싸요. 팔면 밑지는데 어떻게 팔아요...”

마지막으로 들른 식당에서 겨우 곰치국을 먹었다. 신김치를 썰어넣은 얼큰한 국을.

늦은 점심을 먹고 대관령에 전화를 넣어보니 차라리 내일 아침에 넘어오라 한다.

기온이 내려가고 있으니 도로가 결빙되면 눈 속에 갇힐 수도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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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십천 절벽 위에 올라앉은 죽서루의 설경을 보러 갔다.

자연암반을 주춧돌로 삼은 누각에 눈이 쌓이니 더욱 고아하고 아름답다.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표석을 보고 사미인곡을 웅얼거린다.

강직하고 청렴하나 융통성이 없었던 송강은 붕당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이라는 평도 들었다. 권력의 부침에 따라 충신이 역적도 될 수 있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요는 모든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 한다 해도

단 한사람이나마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믿어준다면 살아온 보람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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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폭우, 폭음, 폭주, 폭식, 폭소...

한꺼번에 쏟아지는 모든 것들은 위험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쏟아진다면 경계하라. 쏟아지는 것들은 상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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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정동진에 깃든다.

절벽 위에 올라앉은 썬크루즈의 휘황한 불빛 속으로 눈발이 쏟아진다.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세워진 위락시설들이 나는 늘 탐탁지 않다.

35만원짜리 썬크루즈 스위트룸을 고사하고 마을에 엎드린 민박집을 찾아든다.

일기예보는 무시하고 재수 좋으면 내일 아침 일출이라도 보겠지 싶었다.

그러나 뒷날 아침 창밖은 아예 눈 폭격을 맞은 모양새였다.

‘영동지방 폭설, 산간지방 고립’ 아침 뉴스가 또 호들갑을 떤다.

경포호의 겨울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기어이 대관령을 넘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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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넘었다는 대관령 옛길 입구.

박물관에 차를 대고 고개 넘어오는 차들을 보니 군용차 아니면 승합차다.

바퀴에서 체인을 벗기는 군인들에게 물어보니 ‘왠만하면 넘어가지 마세요’한다.

남편을 슬쩍 보니 반가워하는 눈치다. 눈 속에서 모험하고 싶지 않은 거다.

대관령 옛길로 들어서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부럽고 또 부럽다.

어차피 다음 일정으로 진행하기 힘들다면 반정까지 걸어갔다 돌아오면 어떨까.

허리까지 쌓인 눈을 누군가 한쪽으로 치워놓아서 옛길을 잠시 걸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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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이렇게 된것 두타산이나 갑시다. 하늘문에서 관음암으로 내려오지 뭐.”

대관령박물관을 관람하고 네비게이션을 ‘삼화사’로 설정했다.

그러나, 두타산이라고 무사할손가.

매표소 입구에 ‘입산금지’ 팻말과 함께 서 있던 덩치 좋은 관리인은

울산서 여기까지 왔다며 통사정하는 우리에게 ‘삼화사까지만’을 전제로

출입구를 열어준다.

내려오는 스님에게 물어보니 산속에는 사람 키만큼 눈이 쌓여있단다.

러셀도 안 된 상태로 그런 길을 걸어 쌍폭까지 올라갈 용기는 없다.

대웅전 지붕 위에 쌓인 눈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후두둑 떨어진다.

석탑 위에도, 부도 위에도, 무릉반석 위에도 눈, 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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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드럽다고?

눈이 포근하다고?

처음에는 그랬지

짓밟지 마라

저 빛나는 살의

너를 쓰러뜨리리라  

               <강경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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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2박3일 여행 계획은 머피의 법칙이 되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대관령을 못 넘은 이유가 낡은 차 때문이 아니고, 소심한 남편 때문이 아니고

집에 혼자 남아있는 아들 때문이라는 것을.

30대 중반에 얻은 무녀독남 외아들을 두고 둘이 한꺼번에 무슨 일을 당한다면

저 어린 것이 어디에 의지하여 살아갈꼬. 마음 한켠에 항상 그런 두려움이 있다.

우애 깊은 친척이 많은 것도 아니요, 물려줄 재산이 충분한 것도 아닌데

성인이 될 때까지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가 아닐까 싶어서.

하긴 조실부모도 제 몫이요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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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도 두타산도 실패하고 7번 국도에 다시 차를 올렸다.

12살짜리 아반떼는 착하고 순하게 주인 내외를 태우고 밤을 달렸다.

시야를 가리던 함박눈이 어느 순간 비로 변해 파죽지세로 퍼부었다.

허리까지 차오르던 눈, 허공을 가득 메우던 눈, 그것은 정녕 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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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을 도발하는 장면.

신윤복의 그림을 디오라마 기법으로 재현한.

해신당 창호지 문틈으로 찍은 사진. 19세 이상 관람가.

이 장면에서 나는 왜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가 생각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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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만난 풍경. 삼척항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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