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 코스쿤 <Mediterrane Body>
매주 기타교실에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20대에 처음 만져본 악기를 30년이 지난 후 다시 시작했던 거다.
기타는 까다롭고 어려운 악기다. 피아노는 건반 누르는대로 제 음이 나지만 기타는 줄만 튕긴다고 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정확한 운지(運指)를 지키지 않으면 맑은 음색을 내기 힘들다.
기타 목 부분에 손이라도 닿으면 둔탁한 소리가 나서 손목을 완전히 꺾어 줄을 짚어야 한다.
기타 연주를 쉽게 생각했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 투자 시간과 노력에 비해 진전이 더디니 가성비가 낮아서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떠난 기타교실에 3년째 남아있는 남자 회원이 세 명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혼자서도 잘 놀기 위해 기타를 시작했다고 한다.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늙어서도 덜 외로울 것 같아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나이의 여자들 사이에 끼어 꿋꿋하게 기타치는 남자들을 보면서 늙는데도 격이 있고 품위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공원에서 내기 바둑 두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악기를 연주한다고 해서 본연(本然)이 크게 변하는 건 아니었다.
젊었을 적 사업에만 매달렸던 A씨는 간암으로 저승 문턱을 밟고 온 뒤 인생관이 바뀌었다.
성공이 최고의 가치였던 삶을 그는 즐기는 삶으로 바꾸었다.
월요일엔 양궁장에 나가 활을 쏘고, 화요일엔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를 불고, 수요일엔 서예를, 목요일엔 기타를, 금요일엔 유화를 그렸다.
틈틈이 여행도 가고 책도 읽으면서.
손주 돌보기에 재미 붙인 아내와는 주말부부나 다름없었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자유를 인정하고 아내도 은근히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그는 몸을 망가뜨리며 벌어놓은 재산을 더 이상 불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식들도 모두 출가시켰고 아내 몫도 따로 떼어줬으니 남은 돈은 자신이 다 쓰고 가도 되지 않겠냐고.
조용한 성품에 낮은 목소리로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기타를 쳤던 그는 가끔 맛있는 빵이나 과일을 사와서 회원들에게 슬며시 건네주곤 했다.
고맙다는 인사에 입 꼬리만 살짝 말아올리는 그는 정말 신사였다. 늙어가는 남자가 저렇게 멋있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병색이 짙은 얼굴에 항암 휴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했던 그는 차차 생기가 되살아나고 구부정했던 어깨도 펴졌다.
욕망이라는 전차에서 내려 즐기고 나누는 삶으로 갈아탔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그가 결석하는 날은 교실이 텅 빈 것 같았다.
7순이 가까웠던 B씨는 전형적인 한량으로 기억된다.
퇴직 전부터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온 그는 민요에다 장구, 학춤까지 잘 춰서 행사마다 빠지지 않는 유명인사였다.
목소리도 크고 자기주장이 강해 어딜 가나 대장 노릇, 설사 그 반에 책임자가 있다 해도 그는 그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누군 얼굴이 제일 이쁘고, 누군 몸매가 잘 빠졌다며 대놓고 평가하길 좋아했다.
그 평가에서 한 번도 호명되지 않은 사람은 인신공격이라도 당한 듯 무안할 지경이었다.
행사나 회식 때 돈 한번 내지 않으면서도 목소리는 제일 큰 그 남자를 무시하지 못했던 건 나이 때문이었다.
띠 동갑쯤 되는 어른을 대놓고 폄하할 수도 없고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악의는 없는 사람이니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고, 그가 가볍게 굴면 다른 사람들도 가볍게 받아쳤다.
앉았다 하면 자식 자랑 아니면 지적질. 틈만 나면 아무나 가르치려고 들었던 사람.
날 봐, 잘 봐, 이렇게 멋진 오빠 본 적 있어? 하며 자신만만하게 굴었지만 아무도 그 곁에 앉지 않으려 했다.
세상엔 못난 자식도 많고 안 풀리는 집도 많은데, 더군다나 그게 본인들의 노력이 부족해 그런 것도 아닌데,
남의 형편은 안중에도 없이 제 자식 자랑만 늘어놓는 그는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던 것일까?
세 번째 남자 C씨는 그야말로 미스테리였다. 기타를 치러 오는 건지, 놀러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강습시간 내내 똑 같은 코드를 잡고 똑 같은 주법으로 기타를 치다가 수업이 끝나면 어느새 사라졌다.
강사가 아무리 가르쳐도 진전이 없었고 무엇보다 말수가 거의 없었다.
저 남자는 혹시 집에서 나와 갈 곳이 없어 기타교실에 오는 것 아닐까.
아내의 바가지를 못 견뎌 도망치듯 집을 나와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건 아닐까.
나는 그가 우울증을 앓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 초점 없는 눈, 죽지 못해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 그런 의심을 갖게 했다.
모두 다 알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혹은 모른 척하는 상태.
가족들에게 말해 치료를 권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그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지내다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맡기고 매일 용돈을 타 쓰던 그는 활달한 아내에 비해 내성적인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워 집안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고 한다.
가정을 이룬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봐 부끄러운 척도, 기죽은 시늉도 못하고 현실도피자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가 사라져도 그의 안부를 굼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가 빠져도 수업은 진행되었고, 그가 없어도 기타 합주는 계속되었다.
세상 굴러가는 이치가 다 그렇듯이.
어떻게 잘 늙을 것인가? 잘 살기보다 잘 죽기보다 잘 늙기가 어렵다.
여자보다 남자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평생 일만 하고 놀아보지 못했던 족속들이 대부분이다.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이쯤에서 여자들이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노는 방법을, 즐기는 방법을, 소통하는 방법을.
늙어가는 남자들이여. 힘내라. 당신들 뒤에는 우리가 있다.
세파에 거칠어져 가죽보다 질기고 무뎌진 여자들이 당신들의 버팀목이 될 차례다.
기죽지 말고, 허풍 떨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같이 잘 살아보자. 그대들 있기에 우리가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