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켜켜이 쌓인 길을 운무를 헤치고 걸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정선아라리 가락이 흘러나오는데,

'나무 위에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파는데,우리집 영감은 있는 구멍도 못판다네.'

대꾸에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천연덕스러움. 우리가 늙긴 늙나봐.

누군가 살며시 다가온다 해도 이젠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사랑할 수 없는 나이. 그러니 유쾌하게웃어나 볼 일이다.

 

 

북암산 능선에 올라서자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젖은 낙엽 냄새, 알싸한 솔향기, 비가 묻어오는 서늘한 공기...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너무 사랑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이 사람들을.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숨가쁘게 올라오느라 상기된 볼이 소년같이 빨갛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들이 얼굴에 번질거리고...

 

 

은밀한 빛... 밀양

 

북암산 정상 증명사진. 진사가 빠지셨네 ^^*

 

 

안개에서 는개로, 는개에서 비로 변해가는 날씨를 즐기며 문바위를 오른다.

발 아래는 천길 벼랑,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무섭지 않았다.

사랑이 뭔지 모를 때 가장 용감해지는 것이 아닐까?

 

 

비, 바람, 안개 속에서도 연신 웃음짓는 얼굴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속에서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점심이 순식간에 내려갔다.

웃음은 명약이요 고성능 소화제.

 

 

암릉 사이를 비집고 올라서기도 하고

 

 

낙엽길에 주르르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어느새 문바위를 넘어왔네.

저~기 좀봐. 우리가 언제 저길 넘어왔지?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을 헤쳐오다 보니 발목 낙엽은 감미롭기까지...

 

 

 가인계곡 하산길에 물에 첨벙 뛰어든 산강쇠가 있었다.

지천명이 넘도록 30대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아침마다 냉수로 목욕 한다네.

정선아리랑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비아그라를 거쳐 씨알리스로 끝났다.

나이 들면 입으로 양기가 올라간다더니,

실천 능력을 잃어가는 나이라 성적 환타지가 더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가인계곡의 즐거운 한때

 

<Photo by 질고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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