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에나 있고 결국 아무데도 없는 거라고 서정주 시인은 말했다.

수많은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건만, 왜 우리는 자신이 걸었던 옛길을 다시 가고 싶을까.

처녀시절 한때 자운영은 반구대 안쪽 한실마을의 조그만 초등학교에서 1년반을 근무했다고 한다.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무서워서 밤새 울었다는 스무살 처녀.

그녀의 추억을 되찾아주러 우리는 길을 나섰다. 아직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 공기속으로.

 

                                                                                                      (천전리각석/사진:한국문화답사회) 

 

대곡천을 따라 천전리에서 반구대로 이어지는 길은 길도 조망도 아름답다.

 선사시대에서 신라에 이르기까지 옛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그림과 문자도 국보급이지만

두 국보급 문화재가 자리한 계곡이야말로 눈맛이 뛰어난 곳이다.

어떤 여행작가는 이 일대를 가리켜'공룡시대에서 선사시대, 신라시대를 거쳐 오늘까지

여러 시간들이 토막토막 한데 쌓여진 묘한 곳'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한실마을엔 수몰의 흔적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재작년에만 해도 집터가 드문드문 보였었는데.

그해 여름, 한실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진작가를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난다.

일몰사진을 찍고 완전히 어두워져서 산을 넘어오는데, 앞서 가던 그들이 갑자기 차를 세우는 것이었다.

캄캄한 밤중에 산속에서 두 남자가....! 소름이 오싹 끼치면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속으로 무서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씩씩하게 물었다.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요." 천연덕스럽게 둘러대며 한넘이 트렁크 여는 시늉을 한다.

"아, 마, 됐네요. 잘 가던 차가 왜 갑자기 고장이 나요? 장난하지 말고 가세요!"

내가 너무 세게 나갔나? 두 남자는 멈칫하다가 다시 능청스럽게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운영에게 말했다.

"야, 십년감수했다. 큰일 날 뻔했네. 나쁜 넘들! 우리가 어디 흘러있는 여잔줄 알고 떠본거였나봐."

그러나, 자운영은, 참 순진하게도, 어이없게도, 진지하게 말했다.

"왜요? 무슨 큰일이 나요? 무슨 뜻이에요?"

내가 자초지종을 일러주었는데도 그녀는 결코 믿지 않았다. 지금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할수 있냐는 것이다. 같은 울산 사람인데, 차 번호도 알고 있는데...

자운영 같은 천사에게 강도나 폭행범은 반드시 검은 두건을 쓰고 아무도 몰래 감쪽같이 덤벼들 것이다.

 

 

한실에서 범서면 사일리로 넘어오는 길은 허벅지 깊이로 빠지는 낙엽과 야산 둔덕을 넘어 임도와 만나졌다.

사연댐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만나기까지 3시간여, 애돌이 표현대로 한깔딱했다.

임도 중간에서 점심을 먹으며 가이드 시월님의 인생역정을 들으며 아연실색(?)할 뻔.

30대 초반에 포카에 미쳐 몇년을, 이후 또 골프(싱글)에 미쳐 몇년을, 이후엔 당구(300)에 미쳐 몇년을,

그리고 또 몇년인가는 목공에 미쳤었다고, 목수가 되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라고...

살다보면 괄호 밖의 사람들을 더러 만난다. 혼자 바람처럼 떠도는 사람, 어딘가에 푹 빠져 현실을 망각한 사람...

그러나 내가 괄호 안에 산다고 해서 괄호 밖의 사람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문득 와타야 리사의 소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 생각났다.

고독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보다 진정한 1대1의 소통을 원하는 주인공처럼

시월님도 천성적으로 집단에 융화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아니, 융화되지 못하는 걸 스스로 즐기는 건 아닌지. 

나 또한 그와 다름없는 괄호 밖의 사람이 아닌지. 외로운 아웃사이더가 아닌지.  

  

 

 선사인들이 바위에 그린 그림, 암각화.

마광수는 말했다. 저런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수렵행위를 할수 없는 불구였을 거라고.

건강한 동료들이 모두 사냥하러 나갔을 때, 홀로 동굴 속에 남아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자신도 병약했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성적 환타지가 많았다고 그는 말했다. 

 

 

칡꽃이 진 자리에 이렇게 아름다운 씨앗이 맺었다. 

한여름 칡꽃은 창녀의 밤화장처럼 천박하지만 씨앗은 성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꽃이 아름답다고 반드시 열매가 실한 것도 아니며, 천한 꽃들이 비루한 열매를 다는 것만도 아니다.

 

 

 발 아래 사연댐을 두고 해바라기를 즐긴다.

오늘 7시간을 산에서 뭘 했나 몰라? 오르락 내리락 야산들을 타고 기어이 물가에 닿았네.

 

 

사연댐 저 멀리 가지산 주능선. 며칠전 그 화려했던 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무학산 정상 조망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문수산보다 조망이 훨씬 뛰어나다.

태화강이 굽이치며 울산만으로 흘러들고, 그 끝에 일망무제의 동해바다.

가스가 완전히 걷혀 석유화학단지는 물론 미포조선까지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누구랑 함께, 더군다나 여자 3명과 함께 산에 오는 건 처음이라는 시월 님. 언젠가는 꿈을 이루길 빈다.

중국을 거쳐 네팔로, 인도로, 그리이스로... 말년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보내고 싶다는 그 꿈을,

 유랑길에서 어쩌다 '섬진강 봄물같은 여자'를 만나면 한국에 돌아와 죽고 싶다는 그 꿈을...

 

 

뼈 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傷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산으로 가야겠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악전고투, 토곡산 서북능선  (0) 2009.01.11
7암자는 묵언수행(默言修行)중  (0) 2009.01.04
문바위는 운무에 들고  (0) 2008.12.21
만추의 가지산  (0) 2008.11.09
아까운 나날  (0) 2008.10.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