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핀 꽃을 보면 나도 몰래 가슴이 저리곤 한다.

바람을, 벌레를, 캄캄한 밤을 저 혼자 견뎌왔을 꽃 한 송이.

사는 건 견디는 일이다. 묵묵히 견디고 버텨내는 일이다. 저 혼자 고요히 피고 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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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 안개, 이슬비, 운무... 하루종일 눈 앞을 가리던 그 베일들이 고마웠다.

촉촉한 내 마음 함께 젖어서 조릿대 위에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숲 속으로 잦아들고 싶었다.

 가천 불승사-삼봉 능선-신불평원-신불재-불승사,  운무 속을 유영했던 아름다운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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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하나에 꽃 한 송이, 마술에 걸린 거미줄 좀 보라지.

나도 누구에겐가 저렇게 빛나는 존재가 된 적이 있었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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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하나에 목숨을 건 거미처럼 부질없는 것에 많은 것을 걸어왔던 인생.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됐다. 버릴 때가 됐다. 이루지 못할 것들에 연연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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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 사랑하는 사람을 /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 떠나보내고 / 어둠 속에 갇혀 / 짐승스런 시간을 / 살 때가 있다 / 살다가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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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 속의 신불산대피소는 궁궁이가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막 피어난 억새꽃들이 빗속에 함초롬히 젖어있던 신불평원, 별처럼 피기 시작한 구절초 쑥부쟁이들도

그날은 저 꽃들만큼 환호를 받지 못했으리. 아름다워라, 신비로워라!

늘 그 자리에 군락을 이루고 피어있었을 그 꽃들을 제철에 만난 게 처음이라니. 십수 년 저 곳을 스쳤으면서!

시절인연이란 그런 게 아니더냐. 너와 나의 인연이 그런 게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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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그대 몫은 행복, 내일 그대 몫은 기쁨!

남은 날들을 이렇게 웃으며 보내고 싶다. 운무 깔린 인생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맑고 밝고 명랑하게!

 

 

<photo by : 마당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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