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일대에서 내 발길이 가장 자주 닿는 곳이 학심이골이었다.
이었다, 라고 굳이 과거형을 쓰는 까닭은 예전만큼 자주 못가보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 인적이 드물 때의 학심이골을 생각하면 등산로가 반질반질한 요즘이 영 마땅찮기도 하려니와
가파르고 거친 너덜과 위험한 계곡을 트레킹할만큼 내 무릎이 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지산 북쪽 깊숙한 계곡에 숨은 듯 자리잡은 학소대폭포.
학이 깃들었다는 그럴싸한 이름에 손색이 없을만큼 높고 힘차고 멋드러진 폭포다.
다소 위험을 무릅쓴다면 폭포 왼쪽 절벽을 올라 상폭을 보고 오련만... 그 은밀한 선녀탕은 이제 두번 다시 못 가보겠지.
운문령에서 귀바위로 올라오다가 7순의 노부부를 만났다.
주름진 얼굴, 눈부시게 흰 머리카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리터 배낭을 지고 가볍게 걷는게 어찌나 신선한지.
"어르신들은 제 모델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몸 관리를 잘 하셨어요?"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 겨. 부지런히 움직여야재. 우리는 죽기 전까지 걸을 거여!"
막바지 피서 기간이라 그런가, 광복절 휴일이라 그런가, 산에는 사람이 제법 많다.
조용하면 학소대 아래 에메랄드빛 물로 뛰어들까 했더니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참았다.
이 무슨 요염?
사진이 너무 밋밋해서 엑센트를 넣어볼까 했더니 모델을 중앙에 놔서 구도가 틀렸다.
이봐! 오른쪽으로 좀 내려오지? 뭐? 조금만 더 내려오면 미끄러져 황천간다고?
학소대폭포 아래 3단폭포에도 물이 풍성하다.
물줄기를 살려 찍자니 계곡이 어둡고, 계곡을 살려 찍자니 물줄기에 하이라이트 경고등이 들어온다. 어렵다 어려워.
명암, 질감, 색감 3마리 토끼를 잡아보려고 카메라 노출을 8부터 22까지 조여본다.
삼각대도 없이 스피트는 1/30초. 찍을 때 흔들릴까봐 자동셔터로.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
대구에서 온 등산객 한 분이 자청해서 모델이 되었다.
폭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물로 뛰어들었는데, 장대한 기골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미남보다는 호남, 호남보다는 쾌남이 좋으리. 저 폭포처럼 화통하고 시원한!
사진을 목적으로 폭포산행을 하는 건 처음이다.
여름 다 가기 전에 근사한 폭포 사진을 찍고 싶었고, 그 모델로는 학심이골이 제 격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곳, 장마철엔 계곡 전체가 폭포로 변하는 아름다운 곳!
무거운 카메라 둘러메고 왕복 6시간 산길을 걷는 게 만만찮았지만,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내 몸은 낡아갈텐데.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 한다. 볼 수 있을 때 봐야 한다. 다음을 생각하는 공리(公理)는 버리고 싶다.
지금, 현재, 여기가 최선이고 최고다. 이승에서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내세에도 천국은 없다.
저 거침없는 폭포처럼 그대에게 가고 싶다.
시퍼런 심장에 수직으로 가 꽂히고 싶다.
그러나 사랑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운 것이더냐.
천년을 흘러도 아파하지 않는 바위처럼 우리들 가슴도 저렇게 무디어졌을 뿐이고...
사진 찍는 내내 기다려주고, 혼자 잘 놀고... 이쁘다 친구야!
늙어서 나 못 걸어다니면 니가 리어카에 싣고 다녀야 해, 알았지?
학심이골의 잔다르크 ^^*
한때 저런 날도 있었다. 학소대 푸른 물에서 헤엄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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