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알프스의 백미를 보러 간다.  쳐다만 봐도 눈이 황홀한.

한동안 휴식년제에 묶여 있었고, 위험구간이 많아 안내산행도 드물었다.

 

 

                                                                                                                     <토끼봉 정상>

 

                                                                                                                                  <사진: 울산오바우>

 

 

 안내산행 따라나선지도 몇년만인지. 오늘 함께 가는 산악회는 놀랍게도 30대 젊은 여성이 산행대장이다.

멘트도 씩씩하고 안내도 깔끔하다. 음주가무 절대금지, 하산주 없음. 쿨해서 마음에 든다.

06시 울산 출발, 10시 현지 도착. 코스는 운흥리(보은)-토끼봉-상학봉-묘봉-북가치-운흥리 5시간 코스.

  

 

토끼봉을 향해 올라가다가 그 유명한 '울산오바우' 일행을 만났다.

빨간 리본에 손으로 쓴 듯한 '울산五바우' 시그널은 언제나 미답의 길에 달려있곤 했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걷고 있는 영남알프스 일대의 숨은 길들을 그들이 거의 개척했는지도 모른다.

길 없는 길에서 그들의 시그널은 길이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적잖은 안도감을 주었다.

십 수년 전 처음 본 그 빨간 리본과 필체가 변치 않는 것이 어찌나 믿음이 가는지, 한번쯤 꼭 만나고 싶었다.

훤칠한 외모에 날렵한 몸매, 하나같이 준족들이다. 내 상상에 100% 부응하는 산꾼들이다.

 

 

곳곳에 개구멍바위, 아찔한 수직벽, 때로는 레펠코스!

토끼봉을 시작으로 상학봉, 묘봉까지 아기자기한 암릉이 이어진다.

  

 

토끼봉 정상 세레머니 ^^*

이런 데 오면 꼭 이런 포즈 취하는 사람이 있거든~

 

 

속리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끝이 상학봉. 벌써 저기 가 있는 사람들은 뭐야???

 

 

 상학봉. 갓 구워낸 식빵 같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어야 했는데 선두가 어디 있는지 몰라 주린 배를 참고 걸었다.

나이 들면 먹는 게 힘이라더니, 배꼽시계가 12시를 넘자 점점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다.

배낭에 있는 찹쌀떡을 꺼내 먹을 생각도 못했다.

먹고 나면 더 못 걸을까봐, 행여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기다릴까봐.

 

 

지나온 길 뒤돌아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다.

인생도, 사랑도, 인연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네. 눈물나도록 아름다웠으면 좋겠네.

 

 

6시간 가까이 소변 한 번 안봤다면 말 다 했지. 얼마나 땀을 흘렸으면.

위험구간 곳곳에 자일이 깔려있고 우회로도 있어서 생각보다 무섭진 않다.

문제는 유산객(遊山客)이 몇몇 끼어있어 종종 다른 사람들의 진로 방해가 됐다는 사실. 

배에서는 쪼로록 소리, 땀으로 기진맥진한 몸. 헥헥헥...

 

 

바위 사이 좁다란 흙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저 아래는 아득한 절벽.

추락 위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저 길을 내려오고 있네...

 

 

드디어 묘봉. 저것이 묘할 妙인지 토끼 卯인지... 아니면 고양이 猫?

뒤로 보이는 것이 관음봉 넘어 문장대로 가는 능선이다.

 

 

천길 벼랑 위에서 하계를 굽어보며 밥 먹는 즐거움이라니.

답답하고 우울한 세상에 이런 행복조차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리.

 

 

저 녀석 봐라. 아무리 봐도 강아지가 풀 뜯어먹는 먹는 모습 같네.

 

 

묘봉에 도착하니 선두는 하산을 서두르고 있다.

젊고 활달한 기상. 나도 한때는 저런 모습이었을까? 터져나갈 듯한 몸매와 싱싱한 얼굴, 아름답다!

 

                                                                                                                                          <물구나무 아저씨가 찍어준>

 

나 없는(?) 사이에 안내산행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젋은 여성이 산악회를 이끌며 장거리산행을 가이드하는 모습이 아주 좋아보였다.

오늘 속리산 북서릉의 묘미를 만끽한 것만큼 울산오바우를 만난 것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관록이 묻어나오는, 큰 산처럼 넉넉한 인품이 느껴지던 님들,

우리 어느 산에서 다시 만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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