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을 다시 찾은 게 몇년만인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코스는 기억나는데 일행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아마 철쭉 시즌이었던 것같고, 정상에서 중봉 하봉 거쳐 작은골로 내려왔는데

누군가 전화로 연인에게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철쭉이 너무 이뻐서 당신 생각이 나 전화했어!"

기억이란 참 미묘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그 말이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있단 말인가.

 

 

영암사지는 이곳(합천군 가회면) 주민들이 보물처럼 지켜낸 곳이다.

일제시대에 영암사지의 석등을 일본인들이 밤에 몰래 훔쳐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의령까지 쫓아가 찾아왔고,

이후 마을의 옛집을 절터로 옮겨와 영암사지를 지켰다고 한다.

영암사지는 전국의 내노라 하는 폐사지 목록에 꼭 들어있는 합천의 자존심 같은 곳이다.

(영암사지 안쪽, 푸른 숲에 가린 스레이트 지붕이 바로 그 옛집.)

 

 

모산재에서 순결바위로 이어지는 암릉, 언제봐도 화려하다.

 

 

황포돛대바위 아래 피어있는 철쭉이 압권이더만 저 남자들이 일어나야 사진을 찍지.

워낙 유명한 바위라 그런지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저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네.

사람 없을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내가 포기했다.

 

 

눈부신 5월의 첫날, 맑고 밝은 햇살 아래 마음 맞는 벗들과 함께할 수 있음이여!

저 철쭉 모델이 내내 눈에 밟히더라만, 내 사진만큼 그대들 우정도 귀한 것 아니겠소 ㅎㅎ

 

 

"자야, 좋재? 기분 짱이재?"

 

 

모산재에서 황포돛대바위 쪽 조망.

내가 올라갔던 계단이 저렇게 가팔랐었나?

하긴 고생이란 것도 그렇더라.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내가 어찌 그런 불구덩이에 빠졌던가 싶은...

 

 

조망이 너무 멋져 좀 더 당겨본다.

사진 버리는 데는 아까워하지 않는 내가 이 사진은 못 버리겠다.

 

 

지금이 철쭉 일생에 가장 아름다운 한 때, 화양연화(花樣年華)일지도...

 

 

하이엔드 카메라의 색감이 이렇게 좋을줄이야!

프로그램 모드에 놓고 구도만 맞춰 찍으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나오는 걸!

저 연두색 나무들이 제대로 표현될지 내심 걱정했구만...

 

 

 황매평전에는 철쭉이 반만 벙글었다.

활짝 핀 모습보다 오히려 멋지다. 동정녀같은 느낌의...

 

 

지리산 바래봉보다 규모가 훨씬 작지만 널널한 평전에 피어있는 철쭉도 봐줄만하다.

 

 

비단덤에서 천황재 가는 길, 연무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아련하다.

너무 당겼더니 해상도가 나빠지네. 이게 똑딱이의 결정적인 단점인 게야!

 

 

질리도록 많은 꽃을 보고서도 바위 뒤에 숨은 저 꽃 몇 송이에 또 눈이 간다.

사진은 날씨와 모델과 기술의 3박자가 맞아야 하는 거 아닐까.

 

 

 바위에 조그만 틈만 있어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생명이라니.

봄 한철 진분홍 웃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철쭉 너머 칠성바위가 보이고.

 

 

 누룩덤이라는 이름을 얻은 암봉.

예전같으면 기어이 저 바위 꼭대기까지 올랐을텐데 이젠 모험하고 싶지 않다.

하늘나라로 이민 간 윤숙이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네.

"난  짧고 굵게 살기 싫거든. 가늘고 길게 살고 싶거든. 옛날엔 안 그랬는데 말이야..."

 

 

 매바위를 끝으로 감암산의 바위 조망은 끝났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하루였다.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欲望)과 굴욕(屈辱)과 고통(苦痛)과 곤란(困難)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

-이양하 '신록예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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