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만에 서울.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운 아들 덕분에 녀석 방은 내 차지다.

 지난밤 같이 지내며 내일은 여기 가자 저기 가자 그래놓고 넷이 밥 먹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햇살 쨍한 시간엔 집안에서 수다 떨다가 변장 분장 끝내고 하늘공원 갔더니 구름이 무겁다.

억새도 코스모스도 우리 동네만 못하지만,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어디냐.

무거운 카메라 두고 하이엔드를 들고 갔더니.... 몇년만에 쓰는 거라 작동이 서툴다.






억새를 옮겨 심는 과정에서 묻어왔다는 야생화 '야고'

제주 다랑쉬오름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 삭막한 땅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얼마나 번식을 계속할 수 있으려나.






수십년만에 다시 가본 서오릉.

5기의 왕릉과 원, 묘도 물론이지만 주변 산책로를 깔끔하게 정비해 옛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왕릉은 슬쩍 쳐다만 보고 마지막 장희빈 묘소에 들러 무덤 주인과 놀아주었다.

희빈 장씨,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큼 당신이 악랄한 사람은 아니라고 믿고 싶소.....






흐린 날씨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숲 속. 색감도 음영도 살릴 수 없어 밋밋하다.

그래도 소나무 숲 사이로 실뱀처럼 이어지는 길이 얼마나 이쁜지.






저물녘 길상사는 참으로 그윽했다.

빈 법당에 불 켜고 홀로 독경중인 스님의 목소리, 어스럼 같이 은은한 색깔로 피어있던 해국 무리.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걸  잠시 후회했다.





법정스님의 분신 같은 의자. 송광사 불일암에도 저 의자가 있었는데...






성북동 비 오는 밤, 수연산방은 차분하게 젖어있었다.

월북작가 상허 이태준의 고택으로 최인훈의 소설 '화두'에 등장하기도 하는 집.

'문인들이 모이는 산속 작은 집'이라는 뜻의 수연산방은 한국적인 미가 깃든 건축물이다.

특히 오른쪽으로 보이는 돌출누각은 이태준이 함경도에서 분해해 우마차에 실어 서울로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밤 깊도록 그 누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성북동의 밤을 음미했던 시간. 내 마음도 흠씬 젖었다.




'여행은 즐거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 맛보기  (0) 2016.11.21
옛집  (0) 2016.10.23
실크로드, 에피소드  (0) 2016.07.29
실크로드, 우루무치  (0) 2016.07.25
실크로드, 트루판  (0) 2016.07.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