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하룻밤 묵던 날, 여객선터미널 2층에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추자도 전문 사진가 이범진의 작품을 비롯해 반 세기 전의 추자도 풍경을 볼수 있어서 횡재한 느낌이었다.
사진전을 보고 아래층 대합실로 내려와 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 뱅기타고 배타고 좀 피곤했던가?
와이파이 빵빵 터지는 대합실에서 폰을 열고 내일 동선을 짜느라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어? 근데 언제 밖이 이렇게 어두워졌지? 캄캄한 대합실에 나혼자다.
밍기적 일어나 출입문 앞에 섰는데 얼라리? 자동문이 안 열린다.
아니, 겨우 여섯시밖에 안됐는데 문을 잠갔어? 원래 대합실 같은덴 문을 안 닫는 거 아녀?
문 밖으로 항구의 불빛이 빤히 보였지만 인적이라곤 없다. 유리문을 탕탕 두들겨보다가
문을 억지로 벌려보다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대합실을 뱅뱅돌다가 마침내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외딴 섬에 나 혼자 갇혀버린 거다.
그닥 춥지 않은 날씨니 여기서 밤을 샐까? 마침 오리털 외투를 입었으니 얼어죽진 않을 것 같고,
최소한 내일 아침엔 누가 와도 오지 않겠나. 문득 뉴스에서 본 사건이 스치고 지나간다.
안방 욕실에 갇힌 독거노인이 15일동안 수돗물만 먹다 구출된 사건도 있었는데......
혹시 비상탈출구가 있나 싶어 구석구석 살펴본다. 화장실 환풍구로 탈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119를 부를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어쩔수 없이 번호를 누르고 말았다.
그들은 5분만에 구급차를 타고 나타났다. (무려 3명이나!)
남자들은 자동문을 망가뜨릴 수 없어 면사무소 직원을 불러놨으니 좀 기다리라고 한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나는 일부러 볼멘소리를 한다.
“아니, 왜 대합실에 문을 잠가요? 밤새 주민들이 드나들 수도 있는데.”
그들은 내게 왜 이 시간에 거기 들어가있냐고 물으려다 말문이 막힌 눈치다.
허겁지겁 달려온 면사무소 직원이 급히 문을 따고 나에게 사과를 한다.
“이층에 있던 분에게 키를 드렸더니 퇴근하면서 잠가버렸나 보네요.
평소에 여긴 개방된 곳입니다. 추자도엔 도둑이 없거든요.?”
내 안색을 살피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선량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19대원에게 연락처와 이름만 알려주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나바론 하늘길 꼭대기에 삐뚜름하게 걸린 달이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어이없고 가소롭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