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달에 책 한 권씩 읽고 토론하던 모임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의견 충돌로 깨져버렸다.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각자 주장이 너무 강했던가 보다.
K의 아들 결혼식 때문에 모처럼 다시 만난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끝없는 성취욕으로 1인 3역을 마다않던 L은 뇌혈관 장애로 심각한 고비를 넘겼으며
자녀교육에 목숨 걸었던 P는 아이들이 재수 삼수하는 과정을 겪은 뒤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살다보니 깨닫는다. 한껏 낮아져야 진심이 통한다는 걸. 묵은 인연이 편안하다는 걸.
학연이나 지연보다 감성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지루하지 않다는 걸.
내년부터 다시 모이는 독서회 이름 앞에는 '시니어'가 붙었다. 세월이 준 훈장이다.
내년 봄에는 꽃비 내린 뜰에 둘러앉아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퇴직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 년 더 근무할 수도 있지만 연봉과 퇴직금이 줄어드니 조기퇴직을 해야한다.
"퇴직을 결정하고 나니 아침 식사를 같이 할 수도 있고 참 좋네요. 얼마나 오래 갈진 모르지만."
우스개처럼 말하지만, 새벽별 보고 나갔다 밤늦게 돌아온 세월이 장장 30년이다.
승진에 누락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온 세월, 먹고 사느라 즐길 틈도 별로 없었던.
찬바람부는 새벽 출근하는 남자들을 보면 든든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그 남자 등에 업혀 무사히 살아온 세월이 고맙고 미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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