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풍은 별로 예쁘지 않더라고, 시들어 말라버렸더라고

단풍놀이 다녀온 사람들마다 입을 모으더군요.

심신의 상처로 피폐해진 내 영혼을 끌고 가지산 자락으로 숨어들었던 어제.

아, 나는 여태 들었던 풍문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단풍나무보다 더 늠름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만났습니다.

무성한 잎들은 역광을 받아 실핏줄같은 잎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일말의 숨김도 없이 나를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햇살을 받은 그의 나신은 눈물겹도록 투명하고 깨끗하더군요.

단풍나무는 지금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절정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절정의 끝이 아무리 허무하다 해도, 그는 아낌없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음껏 활짝 꽃피우고 있었습니다.

열정 이후에 오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지 말라고, 그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황홀, 그 도취, 그 열락... 나는 멀미를 앓았습니다.

어찔어찔 어지러워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흩어질 낙엽같이' 버려진다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꽃피울 수 있다면 나무의 일생도 그리 쓸쓸하진 않을 겝니다.

 

 

 

 

역광 뒤의 그늘이 짙을수록 강렬한 주제의 사진을 얻게 되더군요.

햇살이 만들어내는 보케도 덤으로 얻게 되구요.

한없이 밝은 사람의 얼굴 뒤에 어떤 그늘이 숨어있는지,

강인한 사람의 내면에 어떤 나약함이 숨어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깊은 눈으로 오래오래 응시하는 사람만이 그 그늘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얻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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