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을 보러 나간 바다에서 이 남자가 내 눈에 걸려들었다.
새벽 미명 속에서 써핑보드를 끌고 12월의 바다로 들어간 이 남자에게 겨울바다는 극복의 대상이었을까, 즐거움의 대상이었을까.
허리 깊이의 물 속에서 파도가 오는 걸 기다렸다가 재빨리 보드에 올라타더니
멋지게 파도를 타고 넘는다.
아, 저 허리의 유연한 힘이라니!
그의 얼굴에서 기억 속에 낡아가고 있는 한 남자가 끌려나왔다.
길들여지지 않은 들짐승같은, 조르바같은 한 남자가.
살아있다면 진부령 어디쯤에서 소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남자가.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았고,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위험을 즐기던 그 남자가.
송정 일출. 멋 없는,
두 연인을 위한 들러리로 겨울 밤바다라니...
그러나 때로는 나도 조연이 되어줄수 있는 일이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 밖에.
귀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우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서정주의 '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