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뉴시스】

한국문인협회 울산지회인 울산문인협회(회장 조돈만)는 19일 저녁 남구 캐슬웨딩 5층에서 올해 울산문학상 시상식 및 회원 송년회와 함께 '신고송 문학전집' 출판기념회를 가져 지역 문화계의 관심을 모았다.

문협은 이날 아동문학가·동요작곡가·연극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울산 언양출신 월북작가 신고송의 작품집을 한권으로 묶은 '신고송 문학전집' 출판기념회를 통해 문학전집 저자 김봉희 경남대 교수가 전집을 엮게 된 배경과 의미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대학원 시절 '신고송'이란 이름이 자신을 설레게 했다. 극작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의식이 작용했고, 굴곡진 그의 삶에 대한 연민도 있었던 것 같다"며 "설렘과 연민들이 끝까지 그의 작품 속 문학정신을 끝까지 붙잡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신고송 문학전집은 모두 여섯 매듭으로 구성돼 있고 첫 매듭이 아동문학이다.

김 교수는 "아동문학은 신고송이 처음 문단활동을 시작한 갈래며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말했다.

신고송 전집 아동문학에는 동시 39편, 동화 6편, 아동극 8편 아동평론 8편이 엮어져 있다.

이외 희곡 10편, 문학평론 45편, 시.소설 각 1편, 신고송의 출판.서적물 3편과 기타 산문 등과 마지막으로 '신고송의 삶과 문학관'을해설로 수록해 그의 삶을 복원해 문학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날 문학전집 출판기념회 이후 울산문학상 시상에는 올해의 작가상 운문부문 최일성 시인과 산문부문 강옥 수필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올해의 작품상 시상 운문부문 박장희 시인, 산문부문 박정희 수필가가 수상했다.

행사 말미 신고송 출판기념회를 축하하기 위해 박맹우 울산시장이 참석해 저자와 울산문협 회원들을 격려했다.

한편 울산문협은 '울산문학 겨울호'를 출간해 참석자들에게 배부했다.

<관련사진 있음>

고은희기자 gog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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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문학 바이러스 전염을


                                                강옥


당선소감 쓰기가 이렇게 괴로운 줄 몰랐다.

기대도 예상도 없었고, 평소 문학에 대한 애착이 희박한 터라 더욱 그랬다.

문학을 자기만족이나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지만,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매진하지 않았기에 부끄러움이 더 크다. 가만히 줄 서 있다가 엉겁결에 상을 받은 꼴이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엔 문학에 미쳐버린 남자가 하나 있었다. 쥐스킨트의 ‘좀머씨’처럼 끝없이 걸으며 시를 줄줄 외고 다니던 그 남자는 발이 늘 허공에 떠있는 것 같았다. 무엇엔가 과도하게 미치면 저렇게 되는 거라고, 분수에 맞지 않는 꿈은 일생을 병들게 하는 거라고, 나는 자신을 타이르곤 했다.

절제와 억압의 돌 틈 사이로 수필이라는 야생화가 자생할 줄 몰랐다. 흔한 꽃으로 여기고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 야생화는 개체수가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 감히 그 꽃을 짓밟을 수는 없었다. 정성껏 길러 화분에 올릴 일이었다.

독자는 늘지 않고 작가의 수만 늘어나는 문학은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 어떻게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느냐가 문제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문학성이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옮겨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바이러스로 인해 치명적인 문학병을 옮은 독자가 작가의 꿈을 키울 수 있을 때, 문학이 성공한 거라고 본다.

수필이 푸대접받는 시대에, 그래도 수필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선후배님들께 감사와 함께 용서를 구한다.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쓰겠다는 약속 하나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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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론>

 

  

강옥의 수필세계

-솔직, 담백, 유쾌한 고백-

 

                                                                                                                                      배혜숙(수필가)


작가 강옥은 특별하다. 그녀와 만나면 이웃도, 남자와 여자도 모두 좀 특별해 진다. 작가의 시선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보편성이 엷어진 작품을 끝까지 흥미롭게 읽는다. 어설픈 자기합리화도 없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 할 줄은 더욱 모른다. 자의식의 흐름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수필은 진실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이다. 솔직 담백함이 수필의 맛이다. 달지도 쓰지도 않아야한다. 강옥의 글은 단맛은 분명 없다. 쓰진 않지만 약간 맵다. 톡 쏘는 맛이 강하다. 그것이 작가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가끔 너무 솔직해서 수필 쓰는 우리를 낮 뜨겁게 질책한다. <글쓰기 싫다>에서 더 뚜렷해   진다. 수필가를 반납하고 싶다는 그녀의 토로는 오히려 더 좋은 수필을 쓰고 싶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그러니까 작가는 끊임없이 수필문학의 현실에 고민하고 성실한 글쓰기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  

<화요일은 그 남자와> 에서는 20년간 남편과 살아온 세월을 더듬어본다. 화요일마다 산행을 같이하는 남편에게 대한 연민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천연스레 펼쳐보인다. 내 세울 것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는 삶이다.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결혼생활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고맙고 안쓰러움을 지나치지 않고 짐짓 속내를 드러낸다. 

 

머리가 다 빠지고 허옇게 센 저 남자, 평생 한 직장을 고집하며 외길을 걸어 온 저 남자, 처자식 건사하느라 정작 저 자신은 즐길 줄도 모르고 살아 온 저 남자, 어느 날 밤, 잠자듯이 가 버리면 어쩌나.


 글 여기저기서 묻어나는 남편에 대한 진정성이 빛을 발한다. 부모의 반대로 수저 한 벌로 시작한 살림살이요, 철저히 혼자였다고 고백하지만 남편 덕에 외롭지 않게 살아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잔잔한 감동은 그녀의 글 행간에 깊이 배여 있다. 지나치게 명징한 수필쓰기는 그녀의 고독을 부추기는 듯하다.

강옥의 작품은  산 이야기가 많다. 산을 오르며, 산과 마주하면서 만나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그녀만의 예리한 촉수에 걸려든 사물은 형상화되고 주제는 분명해 진다. 산이라는 공간은 넓게 때론 깊게 수필 속에 스며있다. 그녀의 수필쓰기는 등산과 같다. 끊임없이 오르며 자연과 합일을 이루고자한다.


대표작 < 내 마음의 금봉암 >은 한 번 읽고 나면 좀체 잊혀 지지 않는 작품이다. 구절구절 산의 정기가 흠씬 묻어난다. 하산 길에서 만난 암자 ‘금봉암’에서 뜻하지 않게 속세에서는 갖지 못할 인연을 켜켜이 쌓는다. 읽는 이의 고단한 삶도 잠깐 내려놓고 싶은 암자의 풍경에 흠씬 끌려 금봉암을 찾아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얼굴도 모르는 주인과 비구니와 보름달은 끈끈하게 닿아있다. 그기에 작자 또한 고리를 엮는다. 마음이 무거워 내려놓고 싶은 사람, 세상 때, 벗고 싶은 사람이 찾는 그곳은 < 내 마음의 금봉암 >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작가의 마음에 있기도 하지만 독자의 마음에도 금봉암은 슬며시 자리를 잡는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작가 강옥은 강인함이 매력이다. 다리 수술 후 목발을 짚고 먼 길을 마다않고 수필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후에 작품을 통해서 안 일이지만 좋지 않은 무릎수술은 산에 잘 가기위해서였다. 그리고 목발을 버리자 바로 산으로 달려가는 극성은 아무래도 산이 그녀에게 들어와 버린 탓이다. 작품<추락>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경찰에게 쫓기던 람보가 수천길 낭떠러지에서 정글로 추락하던 그 장면.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나는 람보처럼 떨어지다가 암벽 중간에 걸렸다. 흙과 이끼가 눈앞을 가려 시야가 흐렸지만 내가 추락한 건 분명하다.

(중략)

“머리 안 다치길 다행이네요. 배낭 덕분에 허리도 안 다쳤고….”

모두 한마디씩 건네는데 나는 아프다는 생각보다 무안한 생각만 앞선다.

“머리는 내가 돌보다 단단하니까 안 다쳐요. 떨어질 때 람보 생각나던데….”


허리가 아픈데도 산을 오른다. 그것도 험한 코스다. 아픈 허리 때문 수직 벽을 만나 추락한다. 다행히 나무에 걸려 대형 사고는 면했지만 작가는 능청스럽게 농담을 한다. 태연한 모습에 읽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누구나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생의 절벽을 만나고 자칫하면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경우도 있음을 깨닫는다.

강옥의 작품은 이처럼 수식어를 배제한 문장이 건조체에 가깝다. 언어의 경제성을 고려한 글쓰기로 성실함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산 이야기는 믿음을 준다. 추락의 체험은 높은 산의 정상 같은 글을 빚어 낼 것이다.


<꿈길에나 오소서>는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좀 알싸한 추억이다. 여느 어머니와 다른, 그래서 딸과 어머니의 관계에 흥미가 느껴진다. 그녀의 자아형성기에 좀 특별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혼자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아니, 글을 쓰는 바탕을 길러준 분이 바로 어머니임을 부정 할 수가 없다.

냉정하고 엄격했던 어머니 덕에 소심하고 우울했던 성격을 가지게 되고 고독해진다. 외로움을 덮어버리기 위해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을 작가의 성장기를 훔쳐보는 느낌이다. 어머니, 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숨김이 없다. 은근슬쩍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을 숨기지도 않는다. 단단하게 닫혀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점점 바뀌었다. 그 절절함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함축한다. 「아아,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녀의 인생역정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면서 고독의 뿌리를 슬쩍 건드린다. 역시 수필의 특성은 작가의 개인사를 그려내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진부하고 흥미를 끌지 못하면 지루하다. 관심을 끌 수 없다. 문학이 되려면 재미나 감동, 위트가 들어가야 한다. 강옥의 <꿈길에나 오소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독자도 함께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갖게 된다. 


우리 모두 살다보면 인생살이가 두려워진다. 자연의 힘 앞에서 나약한 존재임을 수시로 깨닫기도 한다. 나 보다 훨씬 잘 난 사람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니는데 어찌 어깨에 힘이 실리겠는가.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것이 사람살이다.

<큰 물 지나고>는 서툰 인생살이에 대한 두려움이 전편에 깔려있다. 큰물 지난 뒤 산길의 어수선함, 저수지의 도도한 황톳물을 보면서 갑자기 현실이 버거워진다. 흙속에 뿌리박고 있어 늘 튼튼한 나무일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다.「믿음」이란 것이 부질없다고 여기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믿음을 소중하게 붙잡고 놓지 못한다.


썩은 나뭇가지는 두 번 다시 붙잡고 싶지 않다. 아, 그러나 언제 나에게 그런 혜안(慧眼)이 열릴까?

만삭의 저수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젖은 신발 속에서 꾸룩꾸룩 흙탕물 구르는 소리가 난다. 서툴고 서툰 나의 인생살이, 언제쯤 흙탕물에 빠지지 않게 될까.


결국 두려움이란 이 글의 결말처럼 서툰 인생살이에서 믿음은 저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생살이가 서툴다고 자주 고백한다. 강옥의 다른 작품 <열두 개울 건너 무장사지 가는 길>에서도 잘 나타난다.

인생은 길이다. 그것도 무장사지 가는 길처럼 열두 개울을 건너기도 하고 산 고비를 수없이 돌아야 한다. 평탄한 신작로라면 문학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그렇다. 무장사지 가는 길은 암곡(暗谷)이라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깊고 깊은 곳이다. 가는 길은 호랑이라도 만날 것처럼 짙은 숲과 깊은 계곡이다. 낮에도 오싹 한기가 느껴진다.

처음 무장사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길을 놓쳐 낭패를 당한다. 산을 다 오르고서야 길을 잘 못 들었음을 깨닫는다. 작가도 말한다.


아차. 길을 놓쳤구나. 우리가 너무 멀리 와 버렸구나. 깨달을 땐 너무 늦었다. 막다른 길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다. 표지판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살다가도 아차 싶을 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이렇게 항상 늦게 깨닫는다. 작가는 후회를 하기보다 다시 돌아간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믿는다. 이 작품은 그래서 밝다. 암곡동 이라는 이름보다는 길이 주는 믿음이 있다.


솔직함은 강옥의 무기다. 솔직함은 때로 유쾌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한 겹 껍질을 벗기고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독하다고 온 몸으로 말하고 있다. 치유할 수 없는 생채기도 삐죽삐죽 보여 읽는 독자가 보듬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녀말대로 인생살이가 만만치 않는데, 모두 열심히 살고 있는데, 혼자서「외롭다, 힘겹다, 두렵다」마냥 투정만 하지 않는다.

제 못남을 속속들이 내 보이면서 산을 오르고 인연을 맺고 절벽 앞에서 절망을 이기려한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수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너무 솔직한 그녀, 그래서 그녀는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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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대표작 3선>

 

                    큰물 지나고


 장마 때문에 아침 산에 못간 지 며칠째.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저수지가 만수위(滿水位)로 터질듯 팽팽하다. 누런 황톳물을 가득 안고 만삭의 아낙처럼 누워있는 저수지에 가보고 싶다.

 비가 개면 가리라. 비가 개면 가리라. 그렇게 며칠을 벼르다가 마침내 갠 날을 맞았다. 아침마다 걷던 산길이 폭우로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발걸음이 급하다. 4차선 도로를 건너 급경사로 시작되는 들머리부터 길 모양이 다르다. 굵은 마사토가 빗물에 휩쓸리면서 깊은 고랑을 이루어 나무뿌리들이 흉하게 드러났다. 산길의 유실(流失)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았던 나무계단도 휩쓸려 내려갔다. 요 며칠 비가 엄청나게 퍼붓긴 했나 보다.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뿌리를 밟고 산길을 오르자니 오금이 저린다. 맨살을 밟는 것처럼 미안하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 개울을 건너면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온다. 징검다리 서너 개가 놓여있던 그 개울은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다.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개울가를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며칠 사이 풀은 내 키보다 훨씬 높게 자라있고 가시덤불도 왕성하게 뻗어있다. 개울가 자투리땅에 누군가 소일거리 삼아 가꾸어놓은 농작물들이 픽픽 쓰러져있다.

 웃비는 그쳤지만 숲은 흠씬 젖어있다. 풀잎에 나뭇잎에 온통 빗방울이 묻어있다. 잠시 비가 갠 사이 새들이 날개를 말리러 나왔는지 머리 위에서 수다스러이 지저귄다. 습기를 머금은 날씨가 호흡을 방해하지만 마음은 수증기처럼 가볍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따먹던 딸기도 이제 끝났고,  수풀 속에 머리 풀고 서 있던 꽃창포도 졌다.

 8부 능선 쯤에 있는 옹달샘에 눈도장을 찍어주고 된비알을 오르면 염포산 능선. 바다 건너 장생포와 석유화학단지, 울산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염포산 능선에서 바라보는 명덕저수지와 일망무제의 바다를 좋아한다.

 요즘은 숲이 짙어 실감이 덜하지만 늦가을 산등성이에서 굽어보는 명덕저수지는 남아메리카 지도와 꼭 닮았다.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칠레까지 모양이 흡사하다. 저수지 물이 줄어들면 페루의 지형이 약간 변하기도 하고 칠레의 길이가 줄어들기도 한다.

 숲 가운데 유현(幽玄)하게 숨어서 사철 변화를 일러주는 저수지를 보며 나는 가끔 한비야를 생각한다. 바람의 딸 한비야는 어렸을 때 세계지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자주 입었다고 한다. 밥 먹다가 옷에 뭐가 묻으면 어머니가

 “얘야. 너 프랑스에 밥풀 묻었다. 인도에 김치 국물 묻었다.” 했단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므로 세계 모든 나라가 그녀에게 이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고.

 지천명에 이르도록 나는 아직 세계가 넓고 낯설다. 명덕저수지가 그려내는 남아메리카 지도가 신비스러워 아침마다 넋을 잃고 쳐다본다. 어쩌면 평생 한번도 가보지 못할 곳인지도 모르는데.

 남아메리카 지도 너머 동해가 몸을 굼틀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하산길을 잡는다. 구름 많은 날씨라 바다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라 드문드문 산을 오르는 사람들 손에 우산이 들려있다. 

가파른 비탈을 스르르 미끄러지며 젖은 나무들을 붙잡는다. 부드러운 억새 능선도 지나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은 설레임으로 달아오른다.

 한 고개만 넘으면 물가에 닿으리라. 오늘 아침 거실에서 본 누런 만삭의 저수지 옆으로.

 그러나 물가의 풍경은 생각보다 처참하다. 폭우에 휩쓸려 내려온 나무둥치들이 둥둥 떠 있는 저수지 주변은 나무와 풀들이 황톳물에 잠겨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지저분한 부유물과 뿌리째 뽑힌 나무들...

 인간관계도 저와 같을지 모른다. 신의가 깊지 않으면 쉽게 흔들려 뿌리 뽑힌다. 쉽게 정들고 쉽게 헤어지는 인간사. 큰비를 맞아봐야 근본을 안다.

 아침마다 느꼈던 그 현묘한 기운은 어디로 가고 저수지에는 도도한 황톳물만 가득하다. 갑자기 소름이 끼치며 두려움이 느껴진다.

 남아메리카가 범람했다! 물가를 돌아 끊어질 듯 이어지던 길이 없어졌다. 계곡을 건너뛰기엔 물이 너무 많고 둘러가기엔 경사가 너무 급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까 생각하다가 억지로 길을 찾는다. 폭우로 깊게 패인 계곡과 저수지의 경계를 간신히 딛고 건너편으로 뛴다. 건너편 기슭에 삐져나온 나무를 힘껏 움켜잡는다.

 순간 나뭇가지가 쑥 빠지며 내 몸은 휘청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진다. 한순간 발이 흙탕물에 빠지면서 옷이 다 젖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나를 건네줄 그 나뭇가지가 썩은 줄도 모르고 나는 너무 쉽게 믿었다. 흙속에 뿌리박고 있어서 든든한 나무인줄 알았다.

 도대체 얼마를 더 살아야 속지 않는 것일까. 너만은 믿으리 하고 마음을 주었다가 번번이 허방을 짚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나이 들면 속지 않을 줄 알았다. 살다보면 사람 보는 눈도 생길 줄 알았다. 옥(玉)을 주고 돌(石)을 돌려받는 일은 다시없을 줄 알았다.

 등 뒤에서 돌팔매를 날리는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썩은 나뭇가지는 두번 다시 붙잡고 싶지 않다. 아, 그러나 언제 나에게 그런 혜안(慧眼)이 열릴까?

 만삭의 저수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젖은 신발 속에서 꾸륵꾸륵 흙탕물 구르는 소리가 난다. 서툴고 서툰 나의 인생살이, 언제쯤 흙탕물에 빠지지 않게 될까. 

                                                                         



          꿈길에나 오소서


 어머니 돌아가신 지 5년여. 꿈길에도 한번 오시지 않는 어머니가 나는 때로 야속하다. 세상 인연은 더 이상 미련 없다는 듯이, 모든 업(業)을 다 벗었다는 듯이 홀연히 떠나신 어머니는 두 번 다시 이승을 보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한평생 아버지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늙어서는 외아들 뒷바라지에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가신 어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보다 서운함이 더 많았다.

 장녀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유난히 나에게 엄격하고 냉정했던 어머니. 성장기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꾸중과 질타는 내 성격을 우울하고 소심하게 만들었다.

 “누구누구 좀 봐라. 얼마나 착하고 공부 잘하니. 너는 그 애 발뒤꿈치도 못 따라 간다.”

 그 말에 주눅 들어 나의 사춘기는 열등의식으로 가득 차있었다. 소외감 속에서 내가 마음을 열수 있는 대상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 만화나 소설이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가 나의 문학성을 찾아주신 거라고나 해야 할까.

 중학생이 되자 젖 몽우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브래지어를 사달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한복 치마 말기를 뜯어서 내 앞에 던지셨다.

 “가시나 못된 게 젖가슴만 큰다. 꽁꽁 싸매라!”

 어머니의 말 한 마디는 지상명령(至上命令)과도 같아서 나는 젖가슴이 커질까봐 밤마다 고민했다.

 한번은 멋도 모르고 친구 언니의 데이트에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털어놓자 어머니는 댓바람에 따귀를 올려붙이셨다.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디 따라갈 데가 없어서 그런 델 따라갔느냐는 꾸중이셨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어머니는 유난히 큰딸에게 억압적이었는데 적령기를 지나도록 한번도 결혼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으셨다.

  “내 사는 꼴을 봐라. 결혼이 뭐 좋으니? 세상 모든 남자들이 너희 아버지 같단다. 여자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게 남자들이야. 결혼하지 마라. 돈 벌어서 혼자 자유롭게 살아!”

 나는 서른이 되도록 그 흔한 맞선 한번 보지 못했다. 일본에서 고등교육까지 받은 어머니가 어찌하여 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한글만 겨우 깨우치고 음주가무에 능란한 한량이셨다. 두 분의 결혼생활이 평탄치 않을 것은 당연한 일, 성장기의 기억에 남아있는 두 분은 언제나 서로 앙앙불락(怏怏不樂)하였다.

 아버지와의 불화는 물론 지지리도 안 풀리는 살림살이가 지겨웠는지 어머니는 40대 중반에 현실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현실도피와 함께 내세에 대한 기대로 날마다 절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중학생 고등학생 연년생으로 줄줄이 커가는 아이들을 두고 어머니는 부처님에게 의지했고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짐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우리 4남매는 일찌감치 자립을 배웠다.

 어머니는 30여년을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셨다. 날마다 새벽 예불을 빠트리지 않았고 절집 대소사를 챙기느라 집안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비로소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어머니에게 유일한 위안이요 기쁨이었던 신앙생활. 그러나 그 신앙생활은 끝내 어머니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모시고 가버렸다.

 어느 새벽, 예불을 마치고 황급히 길을 건너던 어머니는 달리던 차에 치어 돌아가셨다. 빨리 집에 돌아가 아들 내외 밥 먹여서 출근시킬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셨던 게다.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였다. 부처님만 믿고 살아온 어머니가 왜 저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셔야 하나? 과연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부처인가?

 한1년쯤 세월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아무런 고통 없이 그렇게 한순간 어머니를 데려간 것이 부처님의 자비였다는 것을. 한 많은 세상을 떠나 어머니는 지극히 편안한 곳으로 가셨다는 것을.

 생전에 자식들에게 못 다한 게 많으셨던 어머니는 죽으면서 자식들 번거롭게 하기가 싫으셨던 게다. 자존심 강하고 깔끔한 성격답게 어머니는 어머니 방식대로 저 세상에 가신 게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완성한다-

 이 세상에 모성(母性)만큼 위대한 게 있을까. 도둑이나 살인자에게도 어머니는 존귀한 것, 사형수가 죽음 직전에 찾는 이름도 어머니라고 한다. 자식을 대신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뿐이다.

 한때 어머니의 그림자에 짓눌려 열등의식을 키워왔던 나도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나무라지 않았더라면 내가 얼마나 기고만장하였을까. 어머니가 나를 엄격하게 키우지 않았더라면 내가 얼마나 헤프게 살았을까. 어머니가 나를 냉정하게 키우지 않았더라면 내가 얼마나 잘난 척하며 살았을까.

아아... 어머니, 고맙습니다.



         글 쓰기 싫다


 몇 년 전부터 글쓰기가 싫어졌다. 수필가라는 호칭을 반납하고 싶다. 나에게 호칭을 부여한 신문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간단히 붓만 꺾어버리면 된다. 문인협회니 수필가협회니 하는 단체를 탈퇴하면 그만이다.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할 것이고 기억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아는 나로부터 단절되고 싶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과연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큰 회의를 느낀다. 학문적으로 분류한다면 수필이 문학의 장르에 들어가겠지만 현재 문단에서 과연 수필이 그렇게 대접받고 있는가 하는 점은 회의적이다.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수필이 사라진 지 오래고, 정통성 있는 문예지들도 수필을 외면한지 오래다. 수필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새 유명인들이 쓴 신변잡기가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산문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철없는 문학 지망생들은 그게 진짜 수필인줄 알고 덤벼든다. 저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어 그야말로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대로 쓴다. 문장 수련이 덜 된 신변잡기를 써놓고 스스로 감동해 등단을 결심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요즘 등단이 오죽 쉬운가. 각종 문예지에서 배출하는 신인들이 매달

수십 명에 이른다. 어찌 보면 문예지들이 신인모집에 경쟁적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등단을 부추키는 사람이 있다. 문단 권력이 뭐 그리 대단한지 그들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고 있는 후배들을 독려해 등단시키고 자신의 입지를 높인다. 수필문학의 장래를 생각한다기보다 자신의 세력 확장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다른 문학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수필가란 꼬리를 달고 있으므로 타 장르에 대한 언급보다 수필에 대한 자성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수필이 푸대접받는 데는 수필가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수필이 문학의 본령이 되기 위해서는 문학성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깊은 사유와 성찰이 깃든 글, 가슴을 울리는 강한 메시지가 담긴 글-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문학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고 부단히 공부해야 한다. 풍부한 독서와 사색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해야 한다. 명예 차원에서 작가라는 호칭을 얻고 싶어 등단한다면 피를 말리며 진지하게 글쓰기 하는 작가들에게 모독이 되는 짓이다. 나 역시 그런 모독을 범하고 있는 것 같아 붓을 놓고 싶다.

 어딜 가서나 나는 ‘수필가 아무갭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정도로 꼬리를 내린다. 수필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있는가, 내가 정말 작가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직도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

 정체가 모호한 문예지에 겨우 등단하고도 ‘저는 작가 아무갭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떠드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작가라는 포장을 지성미의 상징으로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내실이 없는 자아도취형 작가는 문단의 질적 수준만 떨어뜨린다.

 요즘은 학생들 논술 지도를 목적으로 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사람도 많다. 그 생계형 작가들이 글쓰기를 학습 기능으로 바꿔놓고 있으니 정통문학이 점점 메말라가는 건 아닐까. 혹시 작가 자신도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문학이라고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작가선생님에게 논술을 배우면 점수가 더 잘 나오겠지 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인식에 힘입어 앞으로 생계형 작가들이 더 늘어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등단한 지 십 수 년 되다 보니 백일장이나 현상공모 작품 심사를 맡을 때가 더러 있다. 해마다 작품 숫자도 줄어들고 작품 수준도 낮아지는 느낌이다. 문학에 뜻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을뿐더러 문학에 대한 정체성이 점점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언젠가는 백일장도 현상공모도 사라지리라 싶다.

 인터넷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수필문학은 고사 위기에 와 있다. 생활글 혹은 자기고백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수필은 개인 블로그에 딱 어울린다. 인터넷에 떠있는 수많은 블로그를 검색해보면 상당히 수준 높은 글들이 많다. 인쇄 매체를 이용하지 않았을 뿐, 작가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을 뿐, 정통 문학 이상의 작품성을 가진 작품도 많다.

 이 마당에 굳이 수필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야 하나, 글을 써야 하나, 책을 만들어야 하나 하는 게 내 고민이다. 내가 글쓰기 싫은 이유이다. 개나 고양이나 쓰는 글, 누구 앞에서도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는 수필가,

이제는 정말 벗어던지고 싶다.  <울산문학 46집>

 

 

                                                                                                                 경남대학교 김봉희 교수/ 신고송 전집 편저

 

                                                                                                                                                      박태일/ 교수.시인

 

                                                                                                          천성현 / 문협 사무국장

 

                                                                                                                                        박맹우 울산시장도 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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