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가 1년에 25억을 쓰는데, 그 중에 15억이 내 손에서 결재됐지.

그땐 전화통에 불이 나더니, 이 넘들이 이제 인사조차 안 하는겨.”

원망도 아쉬움도 아닌 덤덤한 말투로 그는 말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가 지루한 회생 과정을 거치는가 했더니

몇 달 전 드디어 다른 회사로 넘어갔고, 이후 그는 한직으로 밀려났던가 보다.

한때의 실세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지금, 회한이 왜 없겠냐만 그는 짐짓 태연하다.

“아무래도 정리해고가 시작될 것 같은데... 내년 초에 회사에서 잘리지 싶다.”

생각 같아선 1년만 더 근무했으면 했는데, 작은놈 졸업할 때까지...

구차하지만, 가장으로서 자식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막중한가 보다.

회사 그만두기 전에 책을 내야겠다고, 그는 나에게 교정을 맡긴 원고를 채근했다.


이미 지방신문에 연재됐던 원고인데, 지면 사정에 따라 길이를 17~18매로 맞췄던 것을 

다시 매만져 더 풍성한 내용으로 완성했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을 3년여 동안 매달 1번씩 구간종주한 기록.

그동안 회사는 공매 절차를 밟으며 이리 저리 떠밀리고 앓아왔다.

그가 걸었던 백두대간은 ‘회사의 회생을 위해’라는 명분을 걸고 사장까지 참여했었다.

그러나, 그러면 뭐하냐고. 다 쓸데없는 짓이야.

이미 오래 전에 정해진 걸 사람만 모를 뿐이야. 저 높은 곳에서는 다 알고 있는데 말야.

쓸쓸하게 웃으며 그는 술잔을 비웠다. 그 좋아하는 술, 이제 맘 놓고 못 먹겠네.

그가 쓴 20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읽으며 나도 백두대간 길을 걸어간다.

한여름 천왕봉에서 육십령을 넘어 백두대간의 丹田 희양산을 아슬아슬 지나가고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취한 듯 걸어와 올해 두 번이나 그 근처에 다녀온 화방재도 넘는다.

백봉령, 삽답령, 닭목령, 대관령... 이 땅의 모든 고개를 넘고 넘어 마침내

한계령에서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설악의 精髓를 보며 대간의 百媚를 함께 느낀다.

3년여 동안 산행 대원들은 절반으로 줄었고, 그에게 남는 것은 산행기 1권뿐일 것이다.

퇴직하기 전에 백두대간 산행기를 내는 것이 그의 마지막 꿈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산친구로서 그의 원고를 미리 읽어주는 일 뿐이다.

오래 전에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은 사람이라 그의 문장에 하자가 있을 리는 없지만

고급 독자로서 준엄한 검열을 미리 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20여년 오랜 세월을 文友로 山友로 지내온 속 깊은 이성 친구, 나의 知己之友여.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아름다운 童顔은 어디로 가고 이제 백발이 성성한 얼굴이 됐네.

형형한 눈빛과 사려 깊은 언행은 맏이로 태어난 그의 본분 때문이었을까.

그 오랜 날들을 알고 지냈어도 단 한 번의 마찰도 없었다. 그의 아량 덕분에.

회사가 어려워지기 전에 그는 일주일에 한번쯤 퇴근 무렵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한번 읽어봐. 아주 좋더군.” 또는 “김학철이란 사람 알어?”

하는 식이었다. 우리가 나눈 얘기는 산 아니면 책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한 편의 시를 읽는 그는 독서광일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신간 리뷰는 모조리 찾아서 읽고, 그 중에 몇 권은 꼭 사야 직성이 풀리던 사람.

30여년 직장생활로 모은 재산이 장서 2천 권 뿐이라니 말해 무엇 하리.

사실 그와 오랜 세월을 알고 지냈어도 일 년에 만난 횟수는 너댓번이 고작이었고,

근래에는 얼굴 보기도 힘들었었다. 그만큼 그의 삶이 신산했던 탓이리라.

예전엔 더러 산행도 함께 했었는데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그마저도 어려웠다.

기록산행에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 나에 비해, 그는 백두대간에 대한 의지가 결연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부정할 수는 없는 것, 나는 나와 다른 그를 인정했다.

내놓고 친하게 지내는 우리를 두고 더러는 질투와 오해를 섞어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서로의 집에서 서로의 파트너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사이, 그게 우리였으므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지금도 노부모에게 지극한 효심을 바치는 사람,

곡절 많은 회사에 다니면서 중간관리자로 산재와 인재를 골고루 겪었던 사람.

누구에게 말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의 속 깊은 이성 친구, 그가 떠날지도 모르겠다.

백두대간 산행기 1권 남겨놓고 충청도 그의 고향으로 가버릴지 모르겠다.

어차피 이삼년 후엔 퇴직할 예정이었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은 고향에 가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퇴직을 앞당겨 이 고장을 떠나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

살아갈수록 왜 이리 이별이 잦은지. 살아갈수록 왜 이리 가슴 시린 일이 많은지.


‘배낭을 옆에 두고 살면 삶의 길이 새의 길처럼 가벼워진다.’

이성선 시인의 말처럼 그는 평생 배낭을 옆에 두고 살았다.

늘 떠나고 싶었지만 노부모와 처자식이 그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그가 모르는 전생의 업보가 그의 목을 죄어왔을 것이다.

그의 산행기를 읽으며 끊어질듯 이어진 백두대간이 우리의 인연 같다는 생각이 든다.

‘山自分水嶺(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우리는 순리대로 살아왔고,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서.

건너지 못할 강은 건너지 않았고, 넘지 말아야 할 산은 넘지 않았다.

소박하고 담백하게 면면이 이어온 그 인연은 겨울산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의 표현대로 굳이 까치발을 들 필요도 없이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이는 겨울산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부르르 화를 내기라도 하면 “성질머리 더럽긴...”하는 게 고작이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나는 스스럼없이 그와의 오랜 인연을 얘기한다.


역사는 물론 동서양 고전과 문학의 향기까지 올올이 스며있는 한 권의 책을 남기고

그는 머지않아 이 고장을 떠날 것이다.

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해도 오래오래 잊지 못할 나의 벗이여.

그대 떠나면서 남긴 한 권의 책에 내 손길을 더할 수 있어 참 행복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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