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의 앨범을 뒤져 이 사진을 찾아냈다. 2001년 4월, 그때만 해도 참 해맑구나.
비슬산 정상에서 조화봉까지 온통 진달래가 만발이었는데....
아무려면 해발 천고지에 5월 중순까지 진달래가 있을까.
4월까지 계속된 추위로 올해는 꽃이 늦다고 했지만, 꽃봉오리가 얼어서 별로 이쁘지 않을 거라고도 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진달래 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9년 동안 난 뭘 했지? 뭐가 달라졌지? 시든 꽃처럼 살아갈수록 초라해지는 심사여.
빛 바랜 추억을 찾아 달려온 길,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진달래꽃 바다를 함께 유영하던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 사람들도 나처럼 빛 바랜 사진을 간직하고 있을까.
비슬산을 밟은 건 세 번째지만 두 번 모두 유가사 쪽에서 올라갔고 이번엔 반대편에서 올라갔다.
각북면 용천사 쪽 알프스산장을 기점으로 정상(대견봉 1,083m)까지 2시간.
조화봉까지 주능선엔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철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걸 또한번 느낀다.
안타까워라, 시절인연이여!
죽도록 사랑해도 맺지 못할 인연이 있고, 재능이 있어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빛을 보지 못하니.....
연두빛 봄물은 해발 천미터까지 순식간에 밀려왔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이성부 '봄' 중에서>
전국의 절터가 모두 명당이긴 하지만 대견사지 또한 탁 트인 조망과 기암괴석이 영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긴, 아무리 영험하다 한들 내가 빌어야 할 절박한 소원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화봉에 못보던 구조물(기상관측소)이 생겼다. 다릿발을 세워 진입로를 만든 모습이 영 낯설었다.
바위의 형상에 곧잘 의미를 붙여주곤 하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가 아직 한국에 있다면 저 바위에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
낡은 배낭을 메고, 등산복도 제대로 없이 그렇게 산에 다녔다. 예전엔.
산에 드는데 어떤 격식이 필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고무신 신고 산에 다니던 사부 덕분이다.
9년후 그녀는 이렇게 변했다. 7순의 사부는 노환으로 투병중이고.....
하루에 담배 2갑 커피10잔을 마시던 노익장이 하루 아침에 폭삭 무너질 줄 아무도 몰랐다.
'숲길'과 함께 7시간. 빛 바랜 추억 저 너머에서 진달래도 서서히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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