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옷 매무새가 망가지듯이
썩 가볍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선 길이라 하루종일 심기가 편치 않았다.
청룡암 산신각 앞에 허드러지게 핀 복사꽃도 마음의 위안이 되지 못했다.
나는 시간 개념이 없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약속 시간 넘기는 걸 예사롭게 생각하는 사람들,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이 늦도록 주저앉아 뭉개는 사람들.
한 두번이면 이해하지만 번번이는 용서 못한다.
인생사가 모두 그렇지만 여행도 등산도 발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혼자인 게 낫다.
<함께 걸을만한 길벗 없거든, 차라리 혼자 걸어 외롭기를 다하여라.>
산벚꽃 그늘 아래 /권경업
저건 소리없는 아우성 같지만 / 실은, 너에게 보이려는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 저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 저렇게 환희 웃기까지의 /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 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낭히 시라도 몇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봐 / 글쎄,금방 글썽글썽해져 /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문예강좌 교재를 만들 요량으로 두어달 전부터 손광성의 수필쓰기를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장애인 대상의 강좌라 나름대로 이런 저런 선입견이랄까 예습을 많이 했다.
시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지적 장애인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결론은,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내가 읽은 5권의 책이 아무 소용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놀아줄 국어선생이 필요했다. 문장도 문법도 관심 밖이었다.
세상 일이 대개는 그렇다. 미리 염려하고 준비하고 지나치게 완벽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절벽에 매달려 손을 놓아버릴 수 있는 자유가 그립다.
<관룡산 암릉, 2010/ 5/2 >
마음 둘 곳 없어라. 저 산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