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탁 트인, 참으로 맑은 날씨.

겹겹이 이어진 산그리메 저 너머 지리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에이, 아니에요. 지리산 주능선은 저런 모습이 아니에요. 여기 지리 종주 갔다 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데요!"

 

 

 

 

누군가의 말을 간단하게 무시하고 말았는데, 올라가면서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창공에 의연히 솟은 가야산을 보면서 깨달았어야 했다.

가야산과의 거리와 방향,  높이, 이런 걸 생각해 보니 서쪽 하늘 멀리 보이는 산은 지리산이 맞다!

 

 

 

지금까지 눈에 익은 지리 주능선의 모습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쉽다는 걸 느꼈다.

충고나 설득보다 스스로 깨닫는 게 최선이다.

 

 

 

 

창녕 법성사에서 사리마을 고샅을 지나 영취산(682m)을 오르는데

산중턱 골짜기에 절 집 두 채가 기묘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 터에 두 절이라...

충효사 극락보전 & 구봉사 대웅전. 어쩌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을까?

 

 

 

 

아기자기한 암릉이 이어지는 영취산은 화왕산, 관룡산의 이름에 가려 빛을 잃었던가 보다.

직립한 바위 끝 돌올하게 솟은 불끈바위가 여인들의 시선을 붙들어맨다.

 

 

 

 

과거가 뭐 그리 중요하고 미래가 뭐 그리 걱정일까. 지금 이 순간이 최선이며 최고다.

 

 

 

 

돌틈에 뿌리 박은 저 소나무. 니 신세도 참 고달프겄다.

비바람이 한시도 너를 가만두지 않을테니, 특출하다는 것이 네 죄목이렸다.

 

 

 

 

내 안의 고정관념을 깨고 지리산을 인정해버리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불화도 사과 한 마디로 깨끗하게 정리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불화도 일방적인 잘못은 없다. 내가 80%면 상대방은 20%의 잘못이 있는 법.

너는 이래서 나쁘고 저래서 더 나쁘고 하는 식으로 따지고 들면 결코 화해할 수 없다.

 

 

 

 

화해를 하자면서 자신이 옳다는 걸 입증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상대에게 반드시 되돌려줘야 하는, 참 못난 사람이다.

 

 

 

  

 아쉽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저 암릉처럼 조화로운 화해는 드물어 보인다.

 

 

 

 

 천태만상의 바위들. 사람 사는 세상이나 다를바 없다.

잘난 넘, 못난 넘, 길쭉한 넘, 둥근 넘... 그래도 그들은 서로에게 '왜 나하고 다르냐?'고 나무라지 않는다.

 

 

 

 

사리마을 입구 시골집 담벼락 앞에 발을 멈추고...

 

 

 

 

하루종일 내 시선을 빼앗아가던 옥천저수지. 그 뒤로 관룡산 암릉이 자못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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