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세상 사람이 다 죽어도 나만은 살 것 같았다.

3차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살아나서 그 사실을 기록할 사명을 부여받은 것 같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특별한 존재인줄 알았다.

그 꿈을 깨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20대까지는 그 과대망상을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살다 보니 내 몫은 주인공도 조연도 못 되는 <지나가는 사람 1,2>에 불과했건만.

 

 

 

 

2년전 봄에 두번째 무릎 수술을 하고 재활 차원에서 시작한 수영이 어쩌다보니 선수반까지 진입하게 됐다.

30대 새댁부터 60대 왕언니까지 12명 전원이 수영 경력 8년 이상, 평균신장 165 이상. 체력도 기술도 따라잡기 힘든 상대들.

여러가지로 열등한 내가 <조연>을 자처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수영대회에 참가했다. (태화강 수영대회는 대회라기보다 놀이였고.)

나 덕분에 꼴찌를 면하게 될 어떤 사람을 위해 기꺼이 <빛나는 조연>이 되고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1, 혹은 주전자 당번 주제에 조연이라니!

남편이 찍어준 사진을 보니 스타트도 늦었고, 기럭지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어머니 어머니, 왜 나를 요로코롬 낳으셨나요 ㅠ.ㅠ)

 

 

 

 

야구장에 치어리더가 있다면 수영장엔 이 사람이 있다. 수미사(수영에 미친 사람들) 회장이란다.

수영복 위에 밤무대 의상을 입고 허리에 카셋트를 찬 채 템버린을 흔들며 신나게 춤추던 저 남자.

하루종일 춤 추며 관람석을 돌아다니더니 남자 접영 50미터에 출전해 멋지게 헤엄쳤다. 미치려면 저렇게 미쳐야 한다. 不狂不及!

조연이면 어떤가, 어릿광대면 어떤가. 남을 위해 내 한몸 기꺼이 망가진들 어떤가. 참 아름다운 사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나는 <지나가는사람1>에 충실하리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지만 희곡에 있으므로 무대에 서게 된 영광을 감사히 여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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