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은 추웠다. 동계장비를 갖추고 야영을 한 사람들도 해 뜨기 전에는 텐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햇귀가 퍼지며 어둠 속에 잠겨있던 풍경들이 커튼을 젖히듯 나타났다. 억새밭을 보고 첫눈이 온줄 알았다.

해가 처음 떠오를 때의 빛- 햇귀. 한동안 잊고 있던 아름다운 우리 말이 생각났다.

 

 

 

 

 깊은 밤, 별은 세상 가까이 내려온다. 지상의 잠들지 않은 영혼들을 만나러 내려오는 별들.

  어두운 산길을 걸으면서도 시선은 자꾸 하늘로 간다. 몇 광년을 달려 이 새벽 나를 만나러 온 별빛이더냐!

몇 억겁을 윤회하여 신새벽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도반들이더냐.

 

 

 

 

 갈퀴 같은 바람과 예리한 추위 사이로 해가 떴다. 새벽은 너무나 잠깐이었다.

 

 

 

 

밤새 산정을 지킨 텐트들이 거룩해보이기까지 한다. 에스키모의 이글루 같다.

간월샘에서 물을 길어와 누룽지탕을 끓였다. 뜨거운 누룽지를 정신없이 퍼먹고 나서야 곱았던 손이 펴졌다.

시퍼런 입술에 혈색이 돌면서 경직됐던 근육이 부드럽게 주인의 몸을 일으켰다.  

 

 

 

 

해발 1,200M엔 가을이 물들고 있다.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중략)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있어도 보인다

                                      <정일근 '쑥부쟁이 사랑>


 

 

 

 

 

 

단조늪에는 물매화가 이쁘게도 피었더란다.

 

 

 

 

암릉 위의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간월재로 가고 있겠지.

 

 

 

 

해발 1,000미터 산상에서 펼쳐진 '울주오디세이'

천재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그랜드피아노 연주와 국악, 춤이 어우러진 이색적인 공연이었다.

지난 해보다 관객은 5배쯤 많았으나, 재미는 1/5 수준. 게스트가 자주 올라와 공연의 맥이 끊긴 느낌이었다.

 

 

 

 

 

 

 

 

 

 

박재동 화백과 임동창의 묘한 어울림.

 

 

 

 

공연하는 동안 1,000여 개의 연을 띄워 장관을 연출했다.

푸른 창공에서 만날듯 말듯, 그러나 끝내 만나지 못하는 연줄...  지상의 인연들도 그렇단다. 연들아.

 

 

 

 

임동창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득음에 전념했다는 소리꾼 송도영. 별명이 '선녀명창'이라네.

 

 

 

 

늙은 호랑이의 등같은 간월재를 내려온다. 쓸쓸할 때나 서글플 때 자주 찾았던 저곳.

오늘은 그랜드피아노 선률과 수많은 인파에 묻혀 바람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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