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시린 날씨에 산을 올랐다. 입김이 하얗게 나오고 귓볼이 빨개지는 날씨를 나는 좋아한다.

열흘 전 캐나다에서 돌아온 아들은 며칠 사이에 라식수술을 받고 학교 앞에 방을 얻어 이사도 했다.

집에 쉬러 온 녀석을 끌고 산을 오르며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날이 있겠노' 싶다.

 

 

 

 

달랑 세 식구. 줄도 빽도 없지만 초라하지도 서글프지도 않다.

부부 인연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자식 인연 또한 하늘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에게는 말도 몇 마디 안 하는 녀석이 아버지와는 두런두런 얘기도 잘 한다.

포항제철의 역사가 어쩌구 저쩌구, 우리나라 축구가 이렇고 저렇고...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도 나는 아들이 문학이나 예술 장르를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발이 땅에 닿아있어야 한다. 나는 한평생 발이 공중에 떠 있었다. 방랑과 방황 사이를 오가며 여기까지 왔다.

 

 

 

 

살아가노라면 /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 높은 곳으로 / 보다 높은 곳으로,

쉼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조병화 '나무의 철학'>


 

 

 

아들은 대학 가면 4촌, 군대 갔다 오면 8촌, 장가 가면 사돈의 8촌이라던가.

그래도 그 4촌 8촌이 우리에겐 둘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사돈의 8촌이 되더라도 끝없이 사랑할 수밖에.

 

 

 

 

아이고, 어느집 아들내민지 몰라도 오늘같이 추운 날 파도잡기 하다 바닷물에 빠졌네.

철없는 여친이 크리스마스 이벤트 해달라고 하디? 대낮에 무슨 폭죽이니?

남의 아들 흉볼 거 없어. 내 아들도 아마 저런 짓 무수히 하고 다닐거라~ ㅎ

3시간 산행하고 해안으로 내려오니 바다는 하얀 뜨게실로 레이스를 만들어 백사장에 활짝 펼쳐놓았다.

 

 

 

 

동지를 갓 지난 지금은 한겨울. 그럼에도 계곡 물 속엔 봄 기운이 스며있다.

3G에 더듬더듬 다가갔더니 세월은 4G로 재빠르게 도망가고... 늘 한 템포 느린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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