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꽃 복수초   2/2>

 

 

<천성산 공룡능선,  2/4 >

 

              

 

우연히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소소한 안부였으면 모른 척하고 말았을 텐데 놀라운 소식이라 잠시 망설였다.

전화라도 걸어볼까, 사무실로 찾아가볼까, 아니면 모른척하고 눈 감아버릴까. 이틀쯤 망설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저런 안부 끝에 조심스럽게 그녀의 근황을 물었다.

"나? 아주 잘 살고 있지. 백운산 밑에 전원주택 지어 행복하게 살고 있어.

남편이 직접 설계한 집인데 주말마다 영화감상회를 열고 있어. 언제 한번 놀러와!"

"저어..... 아저씨는 괜찮으세요? 혹시 편찮으신가 하고....."

"아니,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 우리 아들도 너무 너무 잘 살고 있고....."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그녀는 종달새처럼 지저귀듯 말했다. 얼마 전에 남편을 잃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래, 그랬구나. 내가 소문을 잘못 들었구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턱대고 위로의 말을 건넸더라면 큰 실수할 뻔했구나.

내게 그녀의 소식을 전해준 친구를 만나 따지듯 말했다. 얘, 너 때문에 실수할 뻔했잖아. 멀쩡한 사람을 죽었다고 했으니 그 집 신랑 오래 살겠다.

 

한때는 매일 만나다시피 했던 사이였지만 가는 길이 달랐던가, 어느 길모퉁이에서 홀연히 멀어졌던 그녀다.

"무슨 소리야? 폐암으로 돌아가셔서 교회에서 영결식 치렀는데. 한 서너 달 됐을 걸?"

동그란 눈으로 마주보며 우리는 입을 딱 벌렸다. 서로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당사자는 부인하고 있는데 제3자는 확신하고 있다.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이름보다 아내의 이름이 더 알려졌던 그 남자. 명문대 출신 아내를 자랑스러워했던 그 남자.

지성과 미모에다 끝없는 성취욕으로 승승장구하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외조했던 그 남자. 그의 아내는 왜 남편의 죽음을 숨기는 것일까?

 

다른 도시에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녀를 찾아갈 수 있는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나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꼈다. 평소 그녀의 성품으로는 거짓말하거나 술수를 부릴 사람은 아닌데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위장할 정도로 가식적으로 대할 사이도 아니었다.

최고 학부를 나오고 나름대로 여성의 권익을 위해 사회활동을 하던 사람이 설마 남편 잃은 것을 자신의 약점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남들이 무시할까봐? 혹은 측은하게 생각할까봐?

동정받는 것을 수치로 생각할 만큼 자존심이 대단했던 그녀였으니 남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을까?

 

그녀의 사무실 앞을 지나며 들어가 볼까 말까 며칠을 망설이다 말았다. 그녀가 애써 감추고 싶은 사실을 들추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지인들의 위로나 격려를 거부하고 있는 거다.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 죽음을 남들이 애도하는 걸 그녀는 양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문득 그녀의 얼굴 위로 유명 여의사의 얼굴 하나가 겹쳐진다. 내 아들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그녀는 근동에서 실력 있는 의사로 소문났었다.

갸름하고 여성적인 외모에 세련된 서울 말씨, 환자들에게 자상하고 따뜻했던 그녀는 한 자리에서 오래 병원을 운영해 단골도 꽤 많았다.

오며 가며 그 병원 앞을 지나다니던 어느 날, 그 집 간판이 바뀐 걸 뒤늦게 알았다.

돈 많이 벌어 이사를 갔나 하고 이웃에 물었더니 교통사고로 남편이 죽은 후 병원 문을 닫았단다.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 중에 배우자 사망이 가장 크다고는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가족의 죽음에 생업을 포기하다니.

의사란 불특정다수의 생명을 보살펴야 할 의무를 지닌 공인이 아니던가.

알고 보니 그 여의사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아 치매가 왔다고 한다.

남편 사후에 병원 문을 다시 열었으나 환자에게 처방전을 제대로 써줄 수가 없었단다.

수십 년 사용했던 의학용어도 잊어버리고 약 이름도 생각이 안나 환자를 볼 수가 없었단다.

옆에서 지켜보던 후배 의사가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폐업을 설득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증상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충격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진행되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증상과, 사소한 자극에도 극도로 예민하게 놀라며 긴장하는 증상,

나름대로 충격을 해결해보려고 특정한 것에 집착하는 증상. 그렇다면 충격으로 인한 치매 증상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정신의학 전문가에 따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식이나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다고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비우며 산다던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자살을 선택하는가 하면,

시장 좌판에서 평생 고생하던 사람이 암 선고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도 한단다.

 

나도 한때는 세상 사람이 다 죽어도 나만은 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을 했었다.

3차대전이 일어나도 나만은 살아남아서 그 전쟁을 기록해야할 의무를 지닌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났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래서 나의 젊음은 겁 없이 저돌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서서히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고,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보며 나도 그들처럼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노병사(生老病死) 중에 인간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대개의 사람들이 죽음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산다.

어린아이가 어두운 곳을 두려워하듯이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입에 올리거나 생각하는 걸 금기시한다.

그러다 갑자기 맞이하는 배우자나 혈연의 죽음에 대책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모든 죽음이 인과응보의 결과도 아니고 우연의 결과만도 아닌 것.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의 영역에서 빼앗아 올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는 숙명 아니던가.

60대 중반,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평생의 도반을 잃은 그녀를 보며 착잡한 심경에 잠긴다.

조증(Mania)에 걸린 사람처럼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던 그녀는 한 번도 내리막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모른다.

자신만은 어떤 불행도 겪지 않고 행복한 일생을 보내리라 생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자만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주눅 들지도 말고, 남은 세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名色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은 오지 안았다  (0) 2013.06.16
수달래가 있는 풍경  (0) 2013.05.04
봉득씨  (0) 2012.11.29
어두운 기억  (0) 2012.09.17
분꽃 한 송이  (0) 2012.08.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