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있나!

카카오톡으로 날아온 사진 한 장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낯익은 여자의 어깨 위에 늙수그레한 중년 남자가 손을 얹고 있고, 그 옆으로 결혼서약서라는 글씨가 확 다가왔다.

<위 두 사람은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거룩한 예식을 통해 부부가 되었음을 증명함.> 모 교회 목사 이름이 끝에 박혀있었다.

“재 넘어 가면 또 다른 꽃밭이 있다고 했지? 네가 얘기하던 그 꽃밭을 만나 결혼했어.”

그녀의 안부는 단 두 줄이었다. 핵폭탄급 내용에 비해 너무나 간결한 안부가 의심스러웠다.

뭐야? 네 인생을 넝마로 만들어버린 남편 때문에 두 번 다시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더니.

고난에 허덕일 때마다 내가 위로했던 말 ‘재 넘어 가면... ’을 그녀는 통쾌한 복수처럼 써먹고 있었다.

 

어떤 남자냐고, 어떻게 만났냐고 따지듯 묻는 나에게 그녀는 분꽃 한 송이를 사진으로 보냈다.

그 남자가 청혼하며 내밀던 꽃이라고 한다. 장미도 백합도 아닌 촌스럽기 짝이 없는 분꽃을, 그것도 딱 한 송이를.

“집 한 칸 없는 남자지만, 분꽃 한 송이에 내 마음 열고 말았어. 실망했지? 미안해.”

정작 실망한 건 내가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 동생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들의 결합을 막았다.

미쳤니? 지금까지 잘 견디다가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야. 그 나이에 홀아비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래?

그렇게 좋으면 잠시 만나고 말아. 결혼은 안 돼. 한 남자한테 당했으면 그만이지 또 당하고 싶어?

갓 이순(耳順)을 넘긴 무일푼의 남자와 살림을 차리다니.

아니, 사실은 살림 차릴 집도 없어 두 사람은 당분간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녀는 친정에 더부살이하는 형편이고, 남자는 시루떡만한 원룸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사랑에 눈멀 나이도 아니고, 냉철한 이성을 넘어 계산만 판치는 이 시대에 느닷없는 순애보라니.

조건만남이 대세인 세태에 최악의 조건을 갖춘 남자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조건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중상(中上)은 되는데.....

혹시 그녀는 증오에 지친 나머지 사랑을 선택해버린 게 아닐까. 지난 십 여 년, 그녀는 전남편 때문에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더 이상 증오에 끄달리기 싫어 사랑을 선택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세상 끝에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니까.

 

독신주의자였던 그녀가 백번쯤 선을 보고 결혼한 첫남편은 배짱 좋고 호방한 성격이었다.

학력도 경력도 없이 몸 하나로 현장을 뛰며 사업을 키워나가던 남자에게 아내는 믿음직한 물주로 자리잡았다.

친정에서 끌어온 돈으로 남편을 성공시키고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낯선 여자가 찾아왔다.

“사모님만 허락하신다면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그 여인은 남편과 내연관계라고 했다. 눈앞에 번개가 내려치는 기분이었다.

독실한 신앙생활로 가정을 지켜가던 그녀에게 사탄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분노로 가슴이 활활 타올랐지만 그녀는 아이들 때문에 가정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함께 살고 싶다는 여인을 돌려보낸 며칠 뒤, 한밤에 여인이 손목을 그었다는 전화가 왔다. 뛰쳐나가는 남편을 붙들고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지금 그 여자에게 가면 나와 우리 아이들과는 영원히 끝이야. 알아서 해요.”

 

엄청난 소용돌이를 한 방에 잠재우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나는 실패하기 싫어. 이혼도 결혼의 실패잖아. 나는 절대로 실패를 인정하지 않겠어’. 그녀는 놀랍도록 당당하고 강인했다.

날아가는 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뒤를 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일 뿐이라고.

그러나, 화수분 같은 친정 돈을 끌어와 남편의 사업을 밀어주던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쓰나미가 덮쳤다.

배포 큰 남편이 무리하게 확장한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그녀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었다.

노란자위 땅에 지었던 빌딩, 최고급 승용차, 그녀를 따르던 직원들.... 무엇보다 그녀의 남편이 빚에 쫒겨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벌판에서 그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철거지역의 빈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비만 오면 마당이 물에 잠기는 동네에서 그녀는 아이들을 공부시켰다.

심야에 도둑처럼 찾아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해 성사시킨 뒤, 동사무소에 모자세대로 등록하고 관청의 도움을 받았다.

자존심이란 먹고 살만할 때 지키는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자존심이 보이지 않았다.

중산층에서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그녀는 아이들이 의무교육을 끝내자 살던 도시를 떠났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방이 없어서였고, 전남편이 아이들을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을 망친 인간이, 이제 와서 제 새끼를 찾는다니. 용납 할 수 없어. ”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 옛날 내연 관계였던 여자를 만나 재혼까지 해버린 것이다.

한밤중에 손목을 그은 그 여자는 살던 남자와 헤어지고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한다.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고 그들 나름대로는 진실한 사랑이었던가 보다.

재력이 든든한 여자를 만나 재혼한 남편은 그 여자 덕분에 살던 도시로 다시 돌아왔다.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잠적했던 남편이 옛 여자를 만나 잘 산다는 소식은 그녀의 울화통에 기름을 부었다.

그녀는 자식들조차 원망스러워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이제 그만 놔주고 네 인생을 살어. 미워하면서 평생을 살래?

재 넘어 가면 또 다른 꽃밭이 있대. 방금 지나온 꽃밭을 잊어버리거든 그 꽃밭에서 살아.”

한 번도 즐거운 안부를 나누지 못하는 친구가 안쓰러워 나는 짐짓 도통한 척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증오를 계속하는 관계란 얼마나 불행한가.

자식 사랑도 내가 줄 수 있어 행복한 것일 뿐, 내 방식대로 되갚지 않는다고 원망하면 부모 자식 사이도 소원해진다.

 

한동안 소식이 없던 그녀가 카카오톡에 분꽃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모든 것에 배신당하고 괴로움의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위로해준 사람.

그는 시골집 마당 가에 배시시 웃고 있는 분꽃처럼 수더분하고 착한 남자라고 한다.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며 남은 세월을 살겠다는 두 사람의 결심이 눈물겹다.

지난날을 곱씹으며 증오하고 원망하는 것보다 누군가 다시 사랑하는 게 훨씬 나은지도 모르겠다.

한때 풍족했던 그녀는 더 이상 풍족을 원하지도 않고, 가슴 깊이 박힌 상처를 치유해줄 손길만을 기다렸던 걸까.

물질의 풍요가 행복으로 귀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체득한 그녀에게 가난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보다.

분꽃 한 송이에 마음을 열어버린 친구야, 남은 네 인생은 사랑으로 충만하겠구나.

시련도 잊고, 배신도 잊고, 남아있는 날들을 사랑으로 연명할 수 있기를!

 

 

* 사진 / 인생의 황혼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8월5일 저녁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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