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인지 모르겠네. 한여름 신불산을 오르는 것이.

내가 가지 않아도 산은 그 자리에 잘만 있더라. 나 아니라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 지천이니까.

영축산에서 신불재로 내려오는 길, 박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반갑기 그지없다.

 

 

 

 

운무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능선에 한순간 구름 사이로 햇살이 강렬하게 쏟아진다.

숲은 침침하고 사방은 희뿌연 운무에 휩싸여있는데, 신불재만 덩그러니 밝고 환하다.

 

 

 

 

 

 

 

 

 

 

오전 내내 질척대는 비가 지겨워 간단한 행장을 꾸려 산을 올랐던 일요일.

예상대로 비는 점차 개이고, 운무가 밀려오는 영남알프스는 여름산의 진수를 보여준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안개가 밀려들다가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곤 하는 변화무쌍한 날씨.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걸어가는 거야. 각오하고 나서면 못할 게 뭐 있겠나.

 

 

 

 

처음 산에 다닐 땐 남보다 빨리 정상에 이르고 싶었다. 더 많은 산을 더 빠르게 오르고 싶었다.

허리에 힘 빠진 지금은 정상을 고집하지 않는다. 내 체력만큼만 오른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것만 버리면 세상이 이렇게 편한 걸.

 

 

 

 

히말라야에서 실족사한 고미영의 사부가 말했다.

등산의 성공은 정상 정복이 아니라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운무에 휩싸인 아리랑릿지.

여기까지 올 수 있어 다행이다. 이것만 해도 감사하다. 더 이상 아무런 욕심 없다.

 

 

 

 

노란 망태버섯과 보라색 꽃창포를 오늘 산행의 주인공으로 기억하며. (7월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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