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 동네에 오게 될 줄 몰랐네. 쓰라린 아픔이 담긴,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동네를.
두리번 두리번 30년 전의 기억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코끝에 훅 끼치는 쇠 냄새가 그 옛날의 풍경을 고스란히 데려왔다.
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딱 1년을 보냈다. 그땐 시대의 암흑기도 인식하지 못할만큼 순진(?)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듯, 철재상가에 사무실을 내고 쇠 장사에 뛰어들었다. 동업자의 꾐에 빠져서.
평생 사기 한번 당하지 않는 사람 없다는데, 사기란 것도 알고보면 인간의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더냐.
그러므로 사기꾼을 미워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탓하는 게 순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대개 사기라는 게 아는 사람 등을 치는 걸로 완성된다는 사실.
1985년 문래동은 너무 아팠다. 빈 손으로 밤 기차를 타고 낙향할 때가 크라이막스였다.
친구 남편이 갖고온 한 장의 당좌수표와 연이은 부도로 모든 게 사라졌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필요없는 것처럼 개인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때 그랬더라면-은 쓸데없는 얘기다.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떠냐고?
친구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친구 남편은 화려하게 성공했고, 나는 촌구석에 쿡 처박혀 산다.
아무도 밉지 않고, 후회스럽지 않고, 그립지도 않다. 나는 세월에 대해 아주 냉담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달콤한 낮잠이 또 있을까.
사방에 쇳덩이가 쌓였는데 철판 위에 자리를 깔고 낮잠을 잘 수 있다니.
30년 전의 후줄근한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문래동 어느 골목.
푸른 생명들이 줄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생경스럽다. 쇳가루 날리는 땅에도 생명은 피어나느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