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은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첫정에 눈 멀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던 그 시절을 가슴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게 좋지 않겠나.
오랜 그리움을 걷어내고 다시 만난 옛사랑은 십중팔구 실망 내지는 환멸일테니.
8년만에 찾은 왕피천과 그보다 더 오래된 선시골도 옛모습이 아니었다.
군데 군데 폭포와 시퍼런 소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그 계곡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백암 선시골에서 급실망하고 울진 왕피천으로 이동, 오랫만에 물가에서 야영.
강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왕피천트레킹도 예전만큼 재미나지 않았다.
가슴팍까지 오던 물이 무르팍으로 줄었으니 아슬아슬한 맛도 없고 ㅎ
지난 달, 이 물 속에서 한 여자가 죽었다.
바위에서 쉬고 있던 등산객이 스틱을 떨어뜨려 주우려고 물로 뛰어들었다가 허우적 허우적
용소의 깊이가 3미터 이상이니 발이 닿지않아 당황했으리라.
곁에 있던 파트너가 그 남자를 구해볼거라고 뒤따라 물에 뛰어들었고
30대 젊은 연인 둘이 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걸 보고.......... 그 여자가 물로 뛰어들었다.
그 여자, 52살. 수영선수에다 안전요원 자격증까지 있는 베테랑.
물속에서 스틱을 건지고 두 남녀를 물 밖으로 힘껏 밀어내는 데는 성공했는데
그 여자는 심장에 무리가 갔는지 그만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고....
옛사랑을 다시 만나러 가는 짓은 이제 안 할란다.
오래전 그 때묻지 않았던 자연과 풍성한 수량만 기억 속에 간직해야겠다.
물 가에 데크 몇개 만들어놓고 하룻밤 텐트치는 데 3만5천원 부르는 시골 인심.
촌닭이 읍내닭 눈 빼먹는다는 속담이 괜히 생겼겠나. 요즘 촌사람들 무섭다. 노인들이 더 무섭다.
우리 산천에 물만 마른 게 아니고, 인심도 바짝 가물었다. 이런 세상이 얼마나 오래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