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만에 집을 사서 이사한 조카를 보러 갔다.

깔끔한 신도시에 세련되게 뽑아올린 고층 아파트들은 목이 아플 정도로 높고 화려했다.

"얘, 너는 좋겠다. 참 행복하겠다. 30대 초반에 내집마련하고, 살림은 엄마가 다 살아주고....."

진심으로 부러워 한 마디했다. 내가 저 나이 때는 단칸방을 면치 못했는데.

"아뇨. 저 행복하지 않아요."

조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쓴 웃음을 짓는다. 딱히 불행한 건 아니지만, 별로 행복하지도 않단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쁘고

새집 사느라 부부가 1억씩 은행 대출을 받았으니 그거 갚으려면 한 달에 2백만원씩 지출해야 한다.

인생의 황금기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빚을 갚아야 하니 서글프고 사는 게 고달프단다.

친정엄마가 애를 봐주니 그나마 다행이지. 이 상황에 애까지 봐야한다면 직장도 포기했을 거라나.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대기업에 취직한 청년이 한다는 말,

"나, 별로 안 행복해. 뒷 자리 상사들 사는 걸 보면 내 앞날이 빤히 보이거든."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토끼눈으로 하루를 버티다가, 주말이면 하루종일 잠으로 휴식을 대신한다네.

다른 회사를 알아보지 그러냐고 했더니 다른 회사도 상황은 비슷하다나.

요즘 대기업들은 직원을 연봉의 다섯배쯤 부려먹는다는구만.

우리 세대는 행복이니 뭐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삶의 질에 대해 의문이 많은가보다. 먹고 사는 것보다 '폼나게' 사는 게 중요한가 보다.

치열한 경쟁 속에 뒤쳐지지 않고 살려니 얼마나 고달플까.

그렇다고 젊디 젊은 녀석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거나 '다 내려놓고 살아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시를 들려준다면 곰팡내 난다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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