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도 망설였다.
꼭 가고 싶었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어떤 코스로 갈 것이냐, 며칠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내 무릎의 한계를 알기에.
월출산 최고의 조망은 정상(천황봉)에서 구정봉에 이르는 동북능선.
그 코스를 다 밟을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다 들머리에서 결심했다. 119에 실려 내려오더라도 가 보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비장한 각오로 쉬엄쉬엄 올랐다. 명절 앞이라 산은 적요하기 그지없고.
과연, 월출이로다!!!
숨찬 오르막 끝에 주능선에 이르자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즐비하게 나타났다.
눈을 어디에 둘 지 몰라 이리저리 둘러본다. 동서남북 어디로나 수석전시장 같은 암릉이다.
가을빛이 찾아드는 산에는 구절초, 쑥부쟁이, 용담꽃 지천으로 피고
바람 한 자락에도 후두두 떨어지는 열매들은 따가운 햇살에 얼굴 붉히며 여물어간다.
어제 내린 비 덕분인지 베틀굴에는 물이 흥건하다.
15년전 가을, 천황사에서 도갑사까지 월출산 종주하면서 잠시 들렀던 베틀굴엔 물이 없어 싱거웠다.
어제는 비 때문에 우울했는데, 오늘은 비 덕분에 기분 좋고.... 중생의 마음은 이렇게 요사스러운 건지도.
천황봉 직전에 만난 도인풍의 등산객이 자신이 먹을 김밥을 나눠준 덕분에 우리는 구정봉까지 갈 수 있었다.
하산해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지 생각하고 물만 갖고 올라갔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내 걸음이 느린 데다가 군데군데 암릉에 반해 사진 찍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탓이다.
도갑사까지 먼길 가는 사람이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끼니를 선뜻 나눠주다니.... 가슴이 찡했다.
몇 마디 말 붙여보니 역시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다.
주장자를 짚고 산을 오르는 그의 풍모엔 뜬구름같은 자유인과 도인의 이미지가 함께 느껴졌다.
배고픈 중생에게 선뜻 자신의 밥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야 말로 부처요 보살이요 도사 아닐까.
"뭐가 궁금해 수도를 하세요? 삶의 근원을 찾고 계세요? 득도란 무엇인가요?"
"궁금함마저 없어진 자리가 득도라고 해야겠지요. 누구나 깨달을 수 있지만, 그 다음이 문제겠지요."
그가 어느 산 아래 토굴로 스며들지, 바람처럼 떠돌다 다시 만날지는 모른다.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 마음은 기억하리라. 배고픈 이에게 자신의 밥을 나누어 준 그 자비를.